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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인터뷰

외모 성품 모두 유쾌 상쾌한 영원한 소년, 조병무 시인

 

 

8년만이다. 문학행사에서 자주 뵙지만 2007년 3월호 한국수필에 인터뷰를 하고 다시 공식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었다. 변명 같지만 절대 늦는 일이 없었는데 약속시간에서 거의 한 시간이 늦어서 송구스럽기만 했다. 다행히 지연희 발행인이 먼저 도착하여 따뜻한 풍경이니 한숨을 돌리고 앉았다.


조병무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현대문학’ 문학평론 추천(1963-1965)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동덕여대 교수 역임.
현대문학상, 윤동주문학상본상, 시문학상, 조연현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
국제펜문학상 ‘96 문학의 해 기획팀장, 울산대학교<평리문고>개설.
문학평론『가설의 옹호』『새로운 명제』『존재와 소유의 문학』『시짜기와 시쓰기』『문학작품의 사고와 표현』『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문학의 환경과 변화의 시대』『구름다리 위를 거닐다-시조시인 조운 평전
시집『꿈 사설』『떠나가는 시간』『머문 자리 그대로』『숲과의 만남』
수필집『기호가 말을 한다』『내 마음 속의 숲』『한국소설묘사사전(전6권)』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권익옹호 위원장,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Q. 조병무 시인을 뵈면 맑음은 천성이고 한결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의 즐거움’이 외모로 나타나는 것일까 궁금했다.

선생님은 늘 ‘즐겁게 살자’ 라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해결점을 찾아내고 그렇지 못하다면 바로 잊어버리는 성격이라 한다. ‘心外無法’ 붓글씨를 김동리 소설가로부터 받았는데 이 네 자를 일생 동안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자신의 심정과 생각을 그렇게 잘 잡아 주셨는지, 그 후에 시를 쓸 때나 모든 생활의 지침을 바로 ‘心外無法’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고 하신다. 
미국 변호사이면서 늦깎이 소설가인 도널드 프리드먼이 집필한 《작가의 붓》을 보면 세계 유명 작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거나 그림수업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헤르만 헷세나 장 꼭또, 영국의 에밀리 브론테나 샤롯 브론테는 출판사에서 그림집을 내겠다고 할 정도였고 정치가 처칠도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여 전쟁터에 나가서도 그림을 그렸다. 
작가나 화가의 표현세계는 모두 하나의 문으로 통과하는 것이다.  사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조병무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스케치를 했고 고등학교 때는 학원잡지에 실린 문인사진들을 그려서 벽에 붙여두곤 했다. 하지만 아버님이 반대를 하여 안타깝게도 그만두게 되었다. 몇 년 전 ‘닭의 해’ 를 맞이하여 문학의집. 서울에서 吉鳥로 여기는 <닭 그림> 취미전을 전시하기도 했다. 두 달 만에 70점을 그려 호평을 받았는데 온통 닭 그림이면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주변 우려와는 달리 파격적인 닭 그림을 그려냈기 때문에 판매도 많이 되었다. 전시가 끝나고 문학의 집에 기증도 하였는데 또 다른 선생님의 자아실현이지 않을까 싶다.


Q. 주량이 대단하셨던 선생에게 지금도 여전한가 여쭈었다. 왜냐하면 어느 해  강원도 쪽 휴양림으로 1박2일 문학의 집 행사를 갔는데 밤샘 술을 드시고도 꼿꼿하셨던 기억이 있어서다. 

줄이고 줄여서 소주 한 병 정도 마시다가 요즈음은 그것도 끊었다고 하신다. 건강때문이지만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서 2시간 정도를 걷고 30여 분 정도의 기공운동 한지가 40년 이상이지만 최근엔 허리가 좋지 않아서 가끔 낮 산책 정도만 하는 편이라고 말씀하신다. 산책을 많이 하다 보니 산문집 소재도 자연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 선생님은 최근 젊은 인터넷 세대들의 성향에 대하여 짚어주셨다. 기계문명의 괴물들. 떠돌이 같은 작품소재로 즐기는 형상을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때로 어리둥절해진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의 등장 이미지들도 형상은 사람이지만 괴물이 아닌가 싶다는 우려이다. 인간들의 정서와 감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배려와 정감이 사라지는 시대가 염려스럽다고 한다.


Q. 동국대 출신이지만 선생의 작가적 인맥은 범 문단적이라 할 만큼 넓다. 리더십까지 엿보이는 활동범위를 알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백치(바보)’ 동인을 만들어 활동했는데 그 때 같이한 분들은 모두 작가가 되었다. 이제하, 이광석, 김병총. 박현령. 김만옥, 추창영, 강위석, 허 유, 김재호, 염기용. 김용복. 황성혁 등이며, 고 2때 마산불교학생회도 조직했는데 마산여고 학생회장이었던 아내도 그 모임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다 당시에는 ‘문학을 하려면 동국대를 가라’고 할 정도여서 미당 서정주 선생님과 조연현 선생님이 계신 동국대를 입학하여 ‘공백지대’동인을 만들었다고 하신다. 허영자. 박재릉. 이세기. 베스트셀러 ‘슬픔은 강물처럼’을 쓴 최희숙, 김준오, 신경식, 백원배 등이 모여 활동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상(김해경)시인을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읽어왔기에 대학 1학년 때, ‘이상의 문학적 진단’ 평론을 80매를 쓸 만큼 이상시인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학보사 주간이신 송혁 시인이 평론을 읽어보더니 정말 이걸 썼느냐고 놀라면서 연재를 해주었는데 4-5회 정도했을 때 조연현 선생님이 읽고 어느 날 만나자고 하여‘ 시를 할 것인가. 평론을 할 것인가’ 묻고 평론을 하라 조언을 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문학평론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하여 문학적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는 말씀을 건네셨다.


Q. 명백한 좌파‘라 선언했던 조지 오웰은 설익은 지식인의 권력욕을 지적하며 작가는 정당정치에서 자유로워야 진정으로 정직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글을 썼다. 역사의 격변기를 건너온 선생에게 문단까지 정치성향을 갖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쭈었다.

당연히 문학은 정치적인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단호함을 지니고 계셨다. 순수한 문학을 위한 문학인이 중심을 이루어 결집체가 돼 주어야 하고 때문에 이원적 논리나 장악논리의 문단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이다. 60년대. 40년대 특히 해방 전후에 좌. 우익 논리가 팽배했고 지금 다시 정치적 성향의 논리에 휘말리는 기분이 들어 문인이나 문학 단체의 지원관계도 편향되었던 게 사실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진실한 문학적 자기 주관이 있어야 하지만, 요즘 문학을 지망하는 분들은 간혹 문학을 다른 이유의 목적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보인다고 우려하셨다. 좋은 작품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가져야 하고 ‘문학을 한다’는 행위 자체를 인정받으려는 태도를 피해야 문학이 오래 사랑받는다는 조언을 주셨다.


Q. 선생은 퇴직을 한 후 더 자유롭게 활동을 하고 계신다. 영월에서 김삿갓 탄생 백주년 기념 전국 문인 천 삼백여명 앞에서 강연을 하였으며, 동리목월 문학관 강의도 하셨는데 문학인을 위한 복지나 예우, 그 현실을 짚어보고 싶었다.

어떤 단체에 문학 강연을 갔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강연료를 받은 적이 있다 하신다. 사실 행사를 주관하는 쪽의 입장에서 보면 가수 한 사람 초빙할 때 몇 백 만원에서 주는데, 주최 측에서 문학 강연료도 배려를 하도록 주장했다는 이야기였다. 주최하는 입장에서는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계산해서 배려를 하기 때문에 철저히 이제 예술인 복지단체도 만들어졌지만 작가들 복지는 복지라고 말할 상황도 못될 만큼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너나할 것 없는 문단의 큰 과제임을 말씀하신다. 복지 제도도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리나라에는 개인문학관은 지역 따라 있지만 한국을 대표할 한국근현대문학박물관 하나 없는 부끄러운 나라이며, 근현대문학 백년을 넘긴 나라의 수치라고 하신다. 하루 빨리 한국 근현대문학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Q. 문학 장르간의 차별과(일부 정부지원사업을 보면 수필장르가 빠져있기도 하다) 폐쇄적 선긋기가 한국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해 주셨다.

전 세계적으로 예술분야 각 장르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데 유독 문학만 전공 장르를 고집하는 일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하신다. 영상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시. 소설, 수필 등 장르 구분이 분명했지만 온갖 볼거리가 넘쳐나는 지금은 장르와 장르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유독 장르에 집착을 하는 편인데 시, 소설, 수필, 평론 등 모든 장르에 대한 창작능력을 기르고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입술에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열지 못하는 입술/꽃잎은 그 위에 엎어진 채/움직이지 않는다./폭발음이 터져 불꽃이 피듯/한 여름 번개가 일 듯/벼락같이 열고 싶은 입술/꽃잎은 그 위에 엎어진 채/움직여 주지 않는다./열고 싶은 입술은/그 많은 말을 하고 싶어도/하늘같이 성경같이/바다같이 불경같이/움직여 주지 않는다./나비가/입술 곁을 빙빙 돌다/어디론지 날아가 버렸다./꿀벌이/입술 곁을 빙빙 돌다/어디론지 날아가 버렸다./꽃잎은 입술에서 영영 일어설 줄 모른다.’

-조병무 시, 「입술과 꽃잎」 전문


Q. 질적인 성장과 함께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문단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렸다.

지식인 집단이 유입되는 문단의 흐름을 확인하고 있다 말씀하신다. 그만큼 문장을 다듬는 기본훈련은 잘 되어있고 모두 의욕적으로 잘하고 있는데 아날로그 사회가 아닌 이상, 그리고 전업 작가라는 의욕의 강한 집념과 정신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작품의 다양성을 위한 시도나 폭넓은 시각으로 시선을 세계로 돌릴 계기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을 본다면 한국이 노벨문학상이 없는 국가라는 게 안타까운 일이며, 이는 번역과 홍보 등 정부차원의 지원사업도 요구해야하고 국가 간 교류사업도 왕성해져야 한다는 견해를 펼치신다. 문학은 진심을 다해서 사명감으로 창작해 나갈 때 진정성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얹는다면 문단 선후배들 간 예의를 챙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강조하신다. 
70년경에 김동리 선생님에게 세배를 다녔을 때 이야기인데, 그 당시에는 문단의 대선배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일이 하나의 미풍양속이었다고 하신다. 지금은 세배풍습이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고 쓸쓸해 하셨다. 가을이 오는 길목, 언제까지나 문학청년임을 연상하게 하는 선생에게 무한감사를 드리는 자리였다.

 

 

 

에디터 권남희
1987년 『월간문학』수필 당선.
현재 (사)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덕성여대, MBC 아카데미 수필강의
저서: 수필집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 등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