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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작품평

[작품평] [어제와 오늘 사이] 시집 작품평

 

 

 

 

 

양미지 시집 [ 어제와 오늘 사이] 작품평

의미를 뛰어 넘는 단 한 번의 언술

- 작품평 | 지연희 시인

 

 

‘시는 세상만사의 낯익음을 벗어버리고, 미의 형상들의 정수인 알몸으로 잠자는 미를 드러내 보인다’고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Shelley가 시의 본질을 규명하는 미적 가치의 예를 들려주는 부분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의 아름다움을 드높이고 가장 추한 것에다 아름다움을 더해준다는 시문학 이론과 상통하는 논리이다. 셸리는 또한 ‘시인은 어둠 속에 앉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 부르는 나이팅게일이다.’라고 했다. 어둠 속 적막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치유의 아름다움이 시의 존재적 가치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더욱 아름답게 하고, 추한 것들마저 아름다움으로 변형시키는 일은 그 무엇에 비견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일임에 분명하다. 삶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로 시간과 비례하여 매일을 이어가는 일이다.
양미자 시인의 첫 시집 『어제와 오늘 사이』는 2006년 계간 문학지 시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근 10여 년 만에 상제하는 작품집이다. 양 시인은 예기치 않은 뇌출혈로 쓰러져 여러 해 동안 투병하다가 남편과 가족의 극진한 사랑으로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창작의 불을 지피던 지난 시간 속 시편들을 모아 오늘 그 시간의 흔적을 깁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시인의 영혼으로 분출된 분신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소중한 삶이며 기도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절실한 기독교 신앙심으로 구축된 ‘사람’과 ‘자연’에 머무는 삶의 의미를 편편의 시어 속에 튼실하게 짚고 있다. 시인의 시집은 뿌리 깊은 하나님의 섭리로 마련한 맑은 우물 속 샘물과도 같은 진의眞意를 퍼 나르는 감동이 있다. 

 

밤새도록 창문 두드리어 혼곤한 잠 흔들어 세우다가 
이토록 낮은 채도로 침묵의 아침을 내놓는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숱한 물방울 가끔씩 꽃잎에 누울라치면 
어김없이 흔들어 떨어뜨리는 바람, 파도 까만 아스팔트길 위
사선으로 꽂히는 빗줄기는 동그란 나이테를 쉼 없이 그려낸다
와락 달려드는 깊은 맨홀, 
꾸들꾸들 말라가는 추억의 샘,

내 마음 어느 구석진 자리에 청청한 이파리 하나 
띄워놓고 출렁이는 그리움을 잠재운다
- 시 「중년의 허기」 전문

나루터에 발목 묶인 배 한척 밤새 뒤척인다 엉덩이 반쯤 
걸친 갯벌 스멀거리던 꽃게들 제 집 찾아 숨어버리고 
어제를 삼킨 바다 비릿한 오늘을 어렵사리 토해낸다

칭얼대던 갈매기 날갯짓 천천히 커지고 바람매질에 
멍든 파도 배 옆구리 툭툭 치며 출항을 재촉한다 기우뚱거리며 
머뭇거리는 사이 통통거리던 똑딱선 시간에 꿰어 달아나고 
녹슨 엔진 삐걱삐걱 소리만 커지는데, 
군데군데 끊어진 그물코는 어찌하랴

하얗게 부서진 숨찬 파도 
뱃머리 흔들어 새벽 잠 깨운다
                                      - 시 「어제와 오늘 사이」 전문


시 「중년의 허기」는 ‘청청한 이파리 하나’로 비유된 젊음의 시간 속 아름답던 추억을 더듬는 화자의 모습이다. 불현듯 흘러온 시간은 깊은 맨홀과 같은 텅 빈 가슴의 허기를 만들고 ‘유리창’이라는 안과 밖의 공간적 벽을 가르는 사물 위에 마치 거울과도 같은 스스로를 투영시키고 과거와 현재를 크로스오버 하여 조용히 집중하고 있는 자화상이다. 긴밀한 현실 속에 서서 추억 속 아름다운 상념을 모으고 빗방울과 꽃잎과 바람의 유희로 시공을 허무는 현상들을 조합하고 있다. 시인의 상상적이며 창의적인 시선이 머무는 이 시는 매우 멜랑콜리한 배경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밤새도록 창문 두드리며 혼곤한 잠 흔들어 깨우는 빗방울과 그 빗방울이 꽃잎을 흔들어 떨어뜨리고 마는 바람의 장난을 유니크하게 발현시키고 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푸시킨의 말처럼 중년의 허기는 추억 속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리움으로 다듬어낸다. 
시 「어제와 오늘 사이」는 나루터에 발목 묶인 배 한 척의 삶의 내력을 담아낸다. 저녁이면 하루의 업무를 마친 샐러리맨들이 줄줄이 일터에서 쏟아져 나와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듯 꽃게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엉덩이를 반쯤 걸친 갯벌 스멀거리던 꽃게들 제 집 찾아 숨어버리고/어제를 삼킨 바다 비릿한 오늘을 어렵사리 토해낸다’는 것이다. 생명을 지닌 존재들의 오늘은 삶의 절대적 현장인 현실이다. 생명의 숨을 거듭 확인하게 하는 ‘오늘’이야 말로 어제의 그 질곡을 넘고 이룩한 불변의 오늘이어서 눈을 뜨는 일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어제의 하루가 숨을 죽이던 뿌리의 내력으로 이룩한 오늘의 시간은 거듭 내일의 시간으로 달아나고 녹슨 엔진 소리만 커지고 있다는 자연한 법칙을 이 시는 명료히 제시하고 있다. ‘칭얼대던 갈매기 날갯짓 천천히 커지고 바람매질에/멍든 파도 배 옆구리 툭툭 치며 출항을 재촉한다 기우뚱거리며/머뭇거리는 사이 통통거리던 똑딱선 시간에 꿰어 달아나고/녹슨 엔진 삐걱삐걱 소리만 커지는데,/군데군데 끊어진 그물코는 어찌하랴’ 한 생의 피할 수 없는 질서가 유년, 소년, 청년, 장년, 노년의 옷을 입고 종국에는 하얗게 부서진 숨찬 파도 뱃머리 흔들어 새벽 잠 깨운다는 소멸의 순리에 이르고 있음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껍질을 찢고 나온 목련꽃 불 밝힌 알전구 같다

밤의 고요가 덮칠 때마다 
켜켜이 오므려 단단하게 웅크렸던 입술 파르르, 
조금씩 열었던 것 헛디딘 사랑인 줄 
모르고 온몸 활짝 열었던 

풋봄을 너무 일찍 노래한 탓에 
쉰 목소리로 조금씩 떼어내는 성급한 후회 
어둠이 내어준 길 조등처럼 하얗게 울던 그 밤
달도 상심을 앓아 잠을 아꼈다

분통같은 꽃잎 
봄을 완창하지 못하고 제 몸을 빼낸다 
바람에 몸을 실어 허공을 파닥이다
어디 벼랑 끝에 착지 한다 
위태하게, 
아주 위태하게
                     - 시 「이른 봄날」 전문

정수리 닿을 만큼 내려앉은 먹구름 광교산 사잇길 
무겁게 발목 감다가 갑자기 봇물 터진 빗줄기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목이 쉬도록 짖어댄다

눈 감고 양팔 벌려 섧게 우는 하늘눈물 온몸으로 받는다 
숲이 대신 꺼이꺼이 소리를 낸다 
젖가슴 훑어내려 엉덩이 곡선까지 적신 눈물 
속살에 데워져 운동화 속에 철벅하다

내 가슴엔 
터널 하나 급히 뚫리고 
화살촉 같은 햇살에 저만치 
키 큰 자작나무 이파리 
샛초록으로 빛나다
                        - 시 「소낙비」 전문


위의 시에서 제시한 첫 번째의 시 「소낙비」는 이른 봄, 봄의 전령이 되어 다소곳이 꽃잎을 여는 목련꽃의 내력을 화자의 정서에 담아 풀어내고 있다. 시인이 시의 그릇에 담으려는 의미는 전적으로 시인의 정서로 버무린 감성의 산물이다. 이른 봄 꽃샘추위에 ‘껍질을 찢고 나온 목련꽃이 불 밝힌 알전구 같다’는 직감적 이미지의 첫 행이 체득한 언술은 목련꽃은 꽃으로서의 존재적 의도에서 ‘불 밝힌 알전구’가 될 수 있다는 사물인식의 광활한 넓이를 제시하는 의도이다. 사람을 비롯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은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돌멩이 하나, 가시적인 모든 것들과 관념의 그 무엇이라도 동일시 물아일체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의 영혼이다. ‘밤의 고요가 덮칠 때마다/켜켜이 오므려 단단하게 웅크렸던 입술 파르르,/조금씩 열었던 것 헛디딘 사랑인 줄/모르고 온몸 활짝 열었던’ 목련꽃의 헛디딘 사랑은 ‘풋봄을 너무 일찍 노래한 탓’이라 한다. 완창하지 못한 봄(꽃잎)이 바람에 몸을 실어 허공을 파닥이고 있는 모양은 ‘헛디딘 사랑’으로 유입된 실연의 아픔이다.
시 「소낙비」는 광교산 사잇길을 걷다가 갑자기 마주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된다. 목이 쉬도록 짖어대는 소나기의 굉음이다. ‘눈 감고 양팔 벌려 섧게 우는 하늘눈물 온몸으로 받는다’는 소낙비의 슬픔의 크기에 주목하게 된다. 끊임없이 짐승의 소리로부터 울부짖기 시작하여 목이 쉬도록 꺼이꺼이 소리를 내는 빗물의 정체는, 보다 더 구체적인 슬픔의 정도를 제시하기 위한 노력이다. 정수리부터 흘러내린 빗줄기는 젖가슴을 훑어내려 엉덩이 곡선까지 흘러내리는 감당할 수 없는 소낙비의 아픔이다. 그러나 이 시의 결부에 보면 하늘의 눈물(소낙비)은 슬픔의 크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세상 모든 삶의 ‘소나기’는 슬픔의 가슴에 터널 하나 뚫어놓고 화살촉 같은 햇살을 비추어 키 큰 자작나무 이파리를 초록빛으로 빛나게 하는 은총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어지는 기쁨을 위한-

이처럼 사람 많은 세상에서 
사람 없는 삶으로 살다가 
무관심으로 밀어낸 그 자리에 
서로 찔리어 아파하면서도 
당신이 서 있었소.

차갑게 솟은 아파트 꼭지를 휘감아 
흔드는 바람은 
지고이네르바이젠 선율을 흩어 버리오.

내 가슴 한 귀퉁이 
잘려 나간 듯 칼바람이 불면 
훌훌 마지막 기차를 탈 수도 있으려니 
애써 위안으로 당기어 누리고 싶소

산패된 삶의 조각들을 
차라리 토악질로 뱉어내는 
내 인생의 급체를 등 토닥여
 
큰 숨 한번 들이키게 하던 
탑돌이 같은 만석공원 포갠 발걸음 
오랫동안 영상으로 자리 할 거요.

보내는 이 또한 
그 기대로 공백의 몇 년을 밀칠 수 있으리
                    - 시 「떠난다는 것」 전문


삶의 물집이 터질 듯 아파올 때 
뒤틀린 소음을 도망쳐 나온 
낯선 아침,

안개 숲을 헤치고 
누군가 빠르게 연필스케치를 하고 있다 
산 허리춤에 닿은 나무다리 곡선 
물떼새 앉으니 월영교가 휘청 거린다

하얀 어둠속을 걸어 나온 부부 낚시꾼 
다리난간에 기대어 
휘어진 바늘에 찌를 꽂아 던지고, 
엊저녁 쏟아 내린 달빛의 영험이 
엉켰던 어제를 물밑에 가라앉히며 
오늘을 입질 한다

방금 낚아 올린 월척의 비늘이 하늘에 박혀 
첫 기차를 토해내는 입 벌린 산을 
푸르게 비추고 있다
                - 시 「새벽 월영교」 전문



시 「떠난다는 것」은 짧은 유언장과 같은 초연한 이별의 아픔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외롭고 쓸쓸한 혼자만의 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아픔이 무엇인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양미자시인의 자전적 시편인 이 시는 ‘당신’이라 지칭하는 남편에게 전하는 감사와 위로의 메시지이다. 오랜 시간 뇌출혈의 병상에 누워 있던 시인의 조용한 심경을 듣게 된다. 이제껏 지녔던 모든 삶의 가치를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는 소해를 차분히 적고 있어 가슴 뭉클해진다. ‘이처럼 사람 많은 세상에서/사람 없는 삶으로 살다가/무관심으로 밀어낸 그 자리에/서로 찔리어 아파하면서도/당신이 서 있었소.’라고 언급하는 이 시의 첫 연은 사람 많은 세상에서 사람 없는 삶으로 사는 소통 불가의 단절된 외로움이 스며있다. 그럼에도 오직 ‘당신(남편)’의 존재로 하여 지탱할 수 있었던 시인의 모습이 확연하다. 아파트 정상을 휘감아 흔드는 바람은 파블로 데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선율을 지워버리는 절망을 남기지만 당신의 위안으로 버티는 모습이다. ‘산패된 삶의 조각들을/차라리 토악질로 뱉어내는/내 인생의 급체를 등 토닥여’주는 ‘당신’으로 하여 견디어 일어설 수 있었음을 처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 「새벽 월영교」는 사소한 의미를 창의적 시어로 구축하여 짚어내는 언어의 미학을 요소요소에 보여준다. 매우 익숙하게 자연스럽게 뻗어나는 마법과도 같은 언술의 마술사가 양미자 시의 화법이다. ‘삶의 물집이 터질 듯 아파올 때/뒤틀린 소음을 도망쳐 나온/낯선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물집은 피부에 닿는 상처로 인하여 부풀어 오르는 고인물이다. 이 고인물이 터져 느끼는 살을 베이는 아픔이 ‘삶’의 물집이며 뒤틀린 소음을 만들고 낯선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삶의 불협화음을 은유적 언어로 제시하고 있는 시 「새벽 월영교」는 뒤틀린 소음을 도망쳐 나와 엊저녁 엉킨 삶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하얀 어둠속을 걸어 나온 부부 낚시꾼/다리난간에 기대어/휘어진 바늘에 찌를 꽂아 던지고,/엊저녁 쏟아 내린 달빛의 영험이/엉켰던 어제를 물밑에 가라앉히며/오늘을 입질 한다’ 제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라도 때로는 소통부재의 이견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방금 낚아 올린 월척의 비늘이 하늘에 박혀/첫 기차를 토해내는 입 벌린 산을/푸르게 비추고 있다’ 낯선 아침을 지나 익숙한 아침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보인다.

 

헐벗고 굶주린 깡마른 노숙자처럼 까맣게 서 있다 
왕왕 귀가 아프다 
매운바람이 할퀸 손톱자국 아물어 갈 즈음 
생명을 위한 안간힘으로 호흡을 아낀다

차가운 하늘에 얼어붙었던 구름 녹아내리고 
어둔 터널 속, 깊은 들숨에 얹어지는 
꼼지락거리는 태동

아랫배에 알싸한 통증, 산기를 느끼다

생살 터지는 신음소리 둔중한 쓰라림 뒤로 
초록빛 솜털 실눈을 뜬다 
햇빛 잘게 부서져내려 
축복하는 숨 가쁜 첫 마중
                    - 시 「봄을 잉태하다」 전문


오른발 내밀면 버선코 적실 듯 
광목천 같은 달빛 
방짜징의 파장으로 바다 한가운데 
길을 열었다 
하늘 맞닿게 펼쳐주신 
솜다리 꽃길이다 
차마 내딛지 못하고 
목젖까지 차오른 그리움 
방짜의 속울음으로 
그 이름 불러본다
                    - 시 「울릉도 밤바다」 전문



시어의 창의성은 독자의 감성을 일깨우는 놀라운 충격이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언어의 신비를 만나게 될 때 신세계의 발견과도 같은 아름다운 울림을 만나게 된다. 정형화된 사전적 의미를 뛰어 넘는 단 한 번의 울림으로 가슴 속 미묘한 감정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고뇌할 일 없이 해답을 얻는 일이다. 시 「봄을 잉태하다」는 새 생명을 배태한 흙의 계절을 이르는 말이다. 이른 봄날의 어느 날 ‘차가운 하늘에 얼어붙었던 구름 녹아내리고/어둔 터널 속, 깊은 들숨에 얹어지는/꼼지락거리는 태동’을 발견하게 된다. 헐벗고 굶주린 깡마른 노숙자처럼 까맣게 서 있던 생명의 입자들이 꼼지락 거리며 신생아의 분만을 위한 안간 힘으로 ‘아랫배에 알싸한 통증, 산기를 느끼고’ 있다. 곧 출산을 앞둔 산모처럼 대지는 알싸하게 아랫배에 통증을 느끼며 태동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산천엔 생살 터지는 신음으로 가득하다. ‘초록빛 솜털 실눈을 뜬다/햇빛 잘게 부서져내려/축복하는 숨 가쁜 첫 마중’이다. 봄을 잉태한 대지는 새 생명을 분만하느라 여념이 없다. 경이로운 생명 탄생의 아름다움을 신비로운 언어로 향기로운 계절을 열어 놓고 있다. 
시 「울릉도 밤바다」는 달빛의 정취를 물씬 담아내는 10행의 단시이다.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달빛 찬연한 밤바다의 아름다움이 방짜징의 파장으로 길을 연다. 밤 파도의 파장이 징을 치는 서러움이다. ‘오른발 내밀면 버선코 적실 듯/광목천 같은 달빛/방짜징의 파장으로 바다 한가운데/길을 열었다’는 밤바다는 빛과 소리로 어우러진 꽃길을 열고 있다. 하늘 맞닿게 펼쳐주신 솜다리의 꽃길이다. ‘차마 내딛지 못하고/목젖까지 차오른 그리움/방짜의 속울음으로/그 이름 불러본다’는 아픔이 예사롭지 않다. 하늘 맞닿게 펼쳐주신 솜다리 꽃길 열어 보내야 하는 영혼을 향한 진혼시, 달빛 아래 부서진다. 

 

여자의 앞머리 정수리 쪽으로 붉은 바닥이 드러났다 
살점이 보이는 흉터에 짧은 머리카락 몇 가닥 송송 솟아 
가끔씩 쓸어 올리는 손가락을 까끌까끌 찌른다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는 여자, 
외출할 때면 붉은 흉터를 가리느라 머리칼을 이리저리 뒤집는다 
지난해 여자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안타까워 매만지고 주무르는 오빠의 정성으로 마비된 
왼편 팔다리 살아나고 열 살 된 아이마냥 천진으로 굳어진 생각 
칭얼대는 남편과 아들 딸 혓속에서 깨어나 
기적처럼 오늘을 덧대고 있다 
이 기적에 대한 감사를 자칫 엎지르고 
욕심 한줌 들어와 흔들리면 송송 솟은 머리칼 몇 개 
손끝을 꾹꾹 찌르며 벗어난 수위를 알린다 
고목처럼 가족에게 등을 내주기만 하던 여자 
붉은 살점 이리저리 가려주는 머리카락처럼 
손 내밀어 일으키는 가족의 그늘 속에서 
별처럼 총총거리는 삶으로 오늘 하루를 써내려간다
                        - 시 「머리카락 그늘」 전문


내 안에 넘실거리던 감사를 자칫 엎지르고 
그저 그렇게 교회문턱을 넘나들 때도 
하나님, 당신의 숨결 내 안에 살아 
반짝이는 음표로 떠서 여전히 출렁입니다
내 영혼이 젖은 모습 그대로 비탈에 서면 
바람결로 다가와 말리시는 은혜의 향기 
다시금 목청껏 당신을 노래합니다 
욕심의 강물 불어나 가파른 언덕의 살 깎아내리면 
오롯이 사랑해 주신 당신의 뜨거운 숨결을 
가슴 가득 안았습니다 
더위를 식히는 찬물 한 컵 벌컥 마실 수 있음이 
그리도 감사할 일인 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음이 
가슴 벅찬 행복인 줄 이제야 깨닫습니다 
세포마다 감사가 박혀 뻐근해지는 내 몸과 마음을 
이렇듯 가득 채운 것은 생핏줄 타들어오듯 
뜨거워지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이토록 겨운 당신의 사랑입니다
                    - 시 「이토록 겨운 당신을 사랑합니다」 전문

 


시 「머리카락 그늘」과 시 「이토록 겨운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두 편의 시에 담겨진 내용은 어쩌면 이 시집을 출간하는 까닭이며 ‘이토록 겨운’ 이유가 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여자(시인)는 생사를 넘나드는 뇌출혈의 혼란 속에서 막막하게 누워있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현실을 맞닥뜨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남편과 자식들 친정오빠 그리고 그녀가 절실하게 믿고 경외하는 교회 교우들의 기도가 있어 여자는 깨어나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생명의 위기를 딛고 일어서서 말을 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 당신의 은총임을 위 두 편의 시는 간절히 고백하고 있다. 물론 시집 속에는 이 밖의 신앙시편들이 여러 편 하나님 당신 사랑의 이야기로 수록되어 있다. ‘지난해 여자는 뇌출혈로 쓰러졌다/안타까워 매만지고 주무르는 오빠의 정성으로 마비된/왼편 팔다리 살아나고 열 살 된 아이마냥 천진으로 굳어진 생각/칭얼대는 남편과 아들 딸 혓속에서 깨어나/기적처럼 오늘을 덧대고 있다(시 「머리카락 그늘」 중에서).’ 친정오빠의 정성으로 남편과 아들딸의 사랑으로 여자는 일어섰다. 그러나 가끔 ‘이 기적에 대한 감사를 자칫 엎지르고/욕심 한줌 들어와 흔들리면 송송 솟은 머리칼 몇 개/손끝을 꾹꾹 찌르며 벗어난 수위를 알린다’고 한다. 가끔 세속의 덫에 메일 때가 있지만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다. 시 「이토록 겨운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시편들은 완강한 하나님 믿음의 감사이다. ‘내 안에 넘실거리던 감사를 자칫 엎지르고/그저 그렇게 교회문턱을 넘나들 때도/하나님, 당신의 숨결 내 안에 살아/반짝이는 음표로 떠서 여전히 출렁입니다’ 평생 시들지 않은 꽃잎처럼 더욱 굳건해지는 신앙고백이다. 나아가 ‘세포마다 감사가 박혀 뻐근해지는 내 몸과 마음을/이렇듯 가득 채운 것은 생핏줄 타들어오듯/뜨거워지는 당신의 사랑입니다/이토록 겨운 당신의 사랑입니다’ 하며 두 손 모으는 당신의 사랑과 은혜을 향한 절대적 고백이다. 
삶은 예상치 못한 변고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그러나 고난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식은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이 무의식적으로 갈급해 하는 자연함이다. 수술실의 환자가 마취제에 취해 있다가 깨어나는 일도 생명을 지키려는 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절대자인 그분이 인간을 창조하며 주입하신 의식의 하나인 것이다. 꺾인 나뭇가지의 상처 난 표피 곁으로 새순이 돋는 이유도 그분의 주문일 것이다. 빛나는 언어로 시어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양미자 시인의 첫 시집 『어제와 오늘 사이』 에 박수를 드린다. 지난한 어제가 있어 오늘의 기쁨과 행복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아름다운 것들 중에 사람과 사람으로 잇는 사랑만큼 값진 것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잃을 뻔했던 시단의 좋은 시인 한 사람을 되찾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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