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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작품평

[작품평] [함께하는] 시집 작품평

 

 

박진호 시집 [함께하는] 작품평

 

 

공허와 허무의 이중주

- 작품평 | 지연희 시인

 

 

 

지구촌에 뿌리내려 삶이라는 생명 존재의 까닭을 ‘살아내야 한다’는 숙제로 부여받은 뭇 대상들의 번뇌를 생각할 때가 있다. 비단 사람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날짐승과 곤충이나 혹은 미세한 미생물까지 다름이 없다. 집요하게 목숨을 지켜 살아내야 한다는 희로애락의 끊임없는 갈피에서 때로는 울고 웃고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 삶이다. 절박한 이 사슬에 매어 숨을 쉬어야 한다는 본능의 슬픔이 가없이 이어지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다. 박진호 시인은 오늘 상재하는 이 시집에서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화두로 광대하고 절박한 생명 고리의 질서를 풀어내려 한다. 가톨릭 신자인 시인의 이 같은 고뇌 속에는 “삶이 녹록지 않다”는 그러나 근원적인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믿음의 기도와 헌신으로 삶을 이끌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의 첫 시집 『함께하는』은 천주교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사랑, 믿음, 소망의 기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011년 계간 『문파』 문학으로 등단하여 꾸준히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행보는 서울교통공사 직장인이며, 사진작가 활동 등을 겸하며 체득한 시안의 산물이다.   

 

꽃술에 나비 찾듯
해안가 바위의 아늑함은
용궁에서 올라온 연꽃일까

올해도 8월의 매미 소리에 따라
떠나는 피서
새로운 인연 위해

미지의 세계
마도로스의 바람처럼
여름의 신기루 찾는다
                              - 시 「기연奇緣」 전문

 

 

바람의 끝에는 붓이 있어 그림의 향이 울린다 비워내지 못하는 속물의 역한 향을 씻어 주듯이 차분한 한 마디 흐름마다 재스민 향이 배어 있다 재스민 향이 그려가는 자국에 흥겨움이 있다 흥겨움의 어깨춤 뒤에 오는 완성된 그림자는 영혼 안에 명품으로 가득 찬 충만감으로 보인다 어제오늘의 그 모든 순간 속 만들어가야 할 것 잊어버린 추억의 안타까움마저 한 선율이 되어 마음속을 채워주는 뿌듯한 안정감으로
이 순간 해야 할 내일의 희망이 들려온다 바람의 오현 위의 콩나물들을 튕겨 보다 보면 채움과 비움의 울림으로 영혼은 배부르다 소중한 순간의 간절함을 이해하는 듯이
                                                             - 시 「음악」 전문

 

“꽃술에 나비 찾듯/ 해안가 바위의 아늑함은/ 용궁에서 올라온 연꽃일까” 시 「기연奇緣」의 첫 연이며 이 시의 제목에서 유추하게 하는 ‘기이한 만남’의 인연을 ‘꽃’과 ‘나비’라는 대상을 설정하여 비유하고 있다. 워츠-던튼Watts-Dunton은 “시란 인간 정신의 예술적 표현이다”라고 했다. 참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존재들의 연緣을 인연의 고리를 풀고 있듯이.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려 한다”는 로빈슨E,A.Robinson의 이론을수용하고 있다. “해안가 바위”는 “용궁에서 올라온 연꽃”의 현신으로 존재하게 되며 연인을 기다리다 지친 용궁의 연꽃이 해안가 바위가 되어 오늘도 그대 그리움으로 서있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내가 돌이 되면」이라는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를 연상하게 되는데, 서정주 선생은 사물과 나와의 세계가 연관관계를 이루어 삼라만상이 서로 연계되었다는 불교의 인연설을 토대로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연꽃과 바위의 인연설로 회자될 수 있는 박진호의 시는 많은 상상을 통하여 의미를 구현하게 된다. 혼신으로 기도하면 깨달음이라는 꽃을 피워 신비의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는 이치처럼 최선의 노력으로 목청껏 구혼의 노래를 부르는 매미의 충정이 연꽃을 피워내는 기다림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 한 번의 인연을 만나기 위한 일념으로 울어대는 매미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미지의 세계/ 마도로스의 바람처럼/ 여름의 신기루 찾는다”는 시 「기연奇緣」은 시인의 뇌수에 흐르는 ‘기한 연인’을 만나기 위한 매미의 절규이며 구혼의 메시지이다. 
“바람의 끝에는 붓이 있어 그림의 향이 울린다. 비워내지 못하는 속물의 역한 향을 씻어 주듯이 차분한 한 마디 흐름마다 재스민 향이 그려가는 자국에 흥겨움이 있다” 는 시 「음악」의 도입부 언어이다. 한 마디 재스민 향의 시그널이 은은하게 들려오는 듯하여 눈을 감아본다. 음악의 선율이 끌고 가는 아름다움에 취하여 영혼의 충만감으로 가득한 어느 날의 소묘이다. “어제 오늘의 그 모든 순간 속 만들어가는 할 것 잊어버린 추억의 안타까움마저 한 선율이 되어 마음속 채워주는 뿌듯한 안정감”이 가득히 몰려온다. 해야 할 것 잊어버릴 만큼 흥겨운 어깨 춤 뒤에 오는 완성된 환희의 순간에 심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두는 급격히 ‘과거의 그림자’로 희화戱畵되는 모습을 담아낸다. 그림자는 과거로 돌려보내야 할 지난 시간들임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진호 시인의 평상시 보기 드문 흥겨움의 이탈이며 그러나 머뭇거리다가 빠른 속도로 현실에 귀속되는 과정이 시 「음악」의 메타포이다. “이 순간해야 할 내일의 희망이 들려온다. 바람의 오현 위로 콩나물들을 튕겨보다 보면 채움과 비움의 울림으로 영혼은 배가 부르다”는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소중한 순간의 간절함을 이해”한다는 언급으로 보면 까닭을 깁게 된다. 삶의 굴곡과도 같은 바람의 다섯 갈래를 현악기로 연주하는 시인은 채움과 비움이 들려주는 선禪의 울림을 감상하게 한다. 때 묻지 않은 영혼이 피워내는 고난을 딛고 체득하는 긍정의 발현이 아니겠는가 싶다. 마음 비워서 얻는 순수이다. 바람의 붓이 피워낸 재스민 향이 은은하게 번진다.

 

늘 열심히 살아도 모르는 모습의 나
아는 진리는 경계선 모르는 오답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먹이 사슬 속
머리를 따르던 결과 후회만 느낄 뿐
마음으로 물러설 수 없는 링 안에서
비켜서서 허공만 물어뜯습니다
나 아닌 우린 서로의 피해자라고
우기고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갈 구멍 없는 질그릇 안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진실도 거짓의 파편
내가 나에게서 도망하기를 시도했습니다
그 불신의 탈출구가 명상 또는 기도라 하네요
그 기도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이불 속에 머리 박고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데
지나가던 개가 듣고 짖으니 해명할 필요가 없더군요
왜 나를 축복할 시간이 없나요
왜 언제나 선 밖으로 밀려나나요
늘 그렇게 그 자리에서 놀고 있지요
                                            - 시 「무엇일까 3」 전문

 

 

욕조에 몸을 담그고 지난 삶 떠올리면
가위에 눌려 허덕여 온 그늘이 많았다
수영장에 가면 왜 그리 뜨기 어려운지
물 먹지 않으려 허덕이던 시간들
삶이 어려울수록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간절할수록 찾게 되는 신
삶의 그늘이 선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은총
‘선과 악’ 답하는 자 삶의 문이 열린다
개인이 아닌 모두의 문제를 풀어주는 문제
어둠의 그늘에 들어간 자만이 풀 수 있는 기도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건 심판이 있기 때문
어두운 미래에도 희망이 있는 건
하늘 위 햇살과도 같다
                               - 시 「무엇일까 5」 전문

 

‘무엇일까?’의 질문이다. 쉬이 대답되어지지 않는 ‘인생’이라는 화두를 통하여 시인의 고뇌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알 것 같으면서도 난해한 현실로 부딪치는 이 캄캄한 교통체증 같은 진리의 사각지대에 당면하고 말아 후회와 좌절의 연속이다. “늘 열심히 살아도 모르는 모습의 나/ 아는 진리는 경계선 모르는 오답/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먹이 사슬 속/ 머리를 따르던 결과 후회만 느낄 뿐/ 마음으로 물러설 수 없는 링 안에서/ 비켜서서 허공만 물어뜯습니다(시 「무엇일까 3」 중에서)” 어쩌면 시인이 제시하는 세상은 대책 없는 절망의 연속이다. 아프고 아파 좌절의 늪에 빠져 가늠할 수 없는 참담한 삶의 ‘시련’ 앞에서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또한 도망갈 구멍 없는 질그릇 안의 감옥에 갇혀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진실도 거짓의 파편이라서 때로는 내가 나에게서 도망가기를 시도했다. 나에게서 내가 도망간다는 일은 나를 버리기 위한 참담한 음모이다. 이처럼 가득한 절망과 좌절의 굴레에서 시인의 가슴에 손을 내민 절대자인 그분을 향한 믿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 꿇고 항변하고 있다. “그 불신의 탈출구가 명상 또는 기도라 하네요” 그 기도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이불 속에 머리 박고 마음속 이야기를 실토하는데 지나가던 개가 듣고 짖어서 이렇다 저렇다 해명할 필요조차 없더라는 것이다. “왜 나를 축복할 시간이 없나요/ 왜 언제나 선 밖으로 밀려나나요/ 늘 그렇게 그 자리에서 놀고 있지요” 명상 또는 기도의 절대자이신 그분의 뒤를 따라가 보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일까 3」의 마지막 3행으로 그려내는 이 기막힌 질문과 예측은 아직도 그 어두움 가득한 의문이다. “무엇일까요?” 를 향한 극명하게 벗어 날 수 없는 태초의 원죄, 그로부터 시작된 절대한의 죗값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모습을 지닌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무게라는 것이다. 견디어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럼으로 최선의 인내만이 극복하여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시인은 여전히 늘 그렇게 “그 자리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시 「무엇일까 5」에서도 질문의 끈은 이어진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지난 삶 떠올리면/ 가위에 눌려 허덕여 온 그늘이 많았다/ 수영장에 가면 왜 그리 뜨기 어려운지/ 물 먹지 않으려 허덕이던 시간들/ 삶이 어려울수록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간절할수록 찾게 되는 신”을 향하여 울부짖는 버림받은 탕아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물 위에 뜨지 못하는지” 하지만 물 먹지 않으려 허덕이던 시간들을 돌아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간절할수록 찾게 되는 신의 은총이 있어 견디어 일어서는 한 존재의 굳건한 침묵과 만나게 된다. “삶의 그늘이 선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영혼의 맑음만이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은총”이라는 것이다. “내가” 견디어 살아가는 삶의 이유이며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풀어내는 ‘무엇일까’의 답이 된다. 궁극적으로 절망과 좌절의 대명사인 “어둠”의 그늘에 들어간 자만이 풀 수 있는 기도는 녹록지 않은 삶의 시련으로 전하는 심판이라고 한다. 종래에는 어두운 미래일지라도 희망의 빛을 비추어 세상에 밝히는 하늘 위 햇살과 같은 그분의 사랑이 존재함을 시인은 깨우치게 한다.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날개 춤 위에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온 햇살 웃음

꽃무리 속 섞여 있는 나비의 꿈
파도의 물보라 벽을 타고 가는 서핑의 멋

처마 끝 낙숫물이 항아리 안의 벽을 울리는 소리
심금의 줄을 연주하는 빗방울의 한 획

오고 가는 마음의 한 술 건배
어숭그러한 뚝배기 한 사발
                                     - 시 「찰나의 미」 전문

 

 

혼돈에서 깨어나는
구도의 초점을 잡는

언제나 그대로인
일생의 초점

영혼에 투사된 그림
완성되는 그림엽서

심판 뒤의 초대장
선명한 엽서
                    - 시 「깨달음覺」 전문

 

시 「찰나의 미」는 한 폭 한 폭의 사생화를 연마다 풀어내는 그림들이 정교하다. 네 개의 연으로 나누어진 그림의 실체는 화가의 붓끝으로 점묘된 사물의 다양한 모양들이다. 화폭에 담아낸 두 행, 한 연으로의 질서에는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날개 춤 위//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온 햇살 웃음// 꽃무리 속 섞여 있는 나비의 꿈// 파도의 물보라 벽을 타는 서핑의 멋// 처마 끝 낙숫물이 항아리 안의 벽을 울리는 소리// 심금의 줄을 연주하는 빗방울의 한 획// 오고 가는 마음의 한 술 건배// 어숭그러한 뚝배기 한 사발”이 찰나의 시각으로 투시한 시인의 정서가 대칭 법으로 비유되고 있다.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날개 춤 위 구름 사이를 뚫고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눈부신 웃음소리를 듣는다 평화로운 맑은 한낮 공원을 뛰노는 아이들의 동화를 읽게 한다. 꽃무리 속 섞여 있는 나비의 꿈이 파도의 물보라 벽을 타는 서핑의 멋에 대칭되는 그림 또한 허공을 나는 나비에게도 물보라 벽을 타는 신선한 바람이 있음을 깊은 상상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처마 밑 낙숫물이 항아리 안으로 떨어져 벽을 울리는 소리는 심금의 줄을 연주하는 빗방울의 한 획 한 획이다. 하늘 저 편 우주를 관통하며 떨어져 마음의 깊이에 닿는 미묘한 울림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퇴근 후 저녁 무렵 한 술 건배야말로 꾀나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과 나누는 흉금 없는 뚝배기 한 사발이다. 시인의 상상은 어떤 논리의 그물에도 걸림이 없다고 했다. 경이로운 화폭으로 펼쳐준 시 「찰나의 미」가 소유한 아름다움은 박진호 시인의 맑은 시안의 상상력이 취합한 결과물이다. 시 「깨달음覺」은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삼라만상의 실상과 마음의 근본을 깨달아 앎을 터득할 때를 이르는 말이다. 세상사 어려움은 삼라만상의 실상과 마음의 근본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함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깨달음’을 따르지 못한 게으름이 온갖 고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닌가 싶다. 박진호의 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성찰’에 머물고 있다. 까닭에 애초부터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깊었다.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혼돈에서 깨어나는/ 구도의 초점을 잡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의 흐트러진 실타래 모양의 갈등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깨어나 구도의 초점을 잡아 보지만 “언제나 그대로인/ 일생의 초점”에 변함없이 서있는 내가 있다. 현실은 쉬이 바뀌지 않는 영혼에 투사된 그림처럼 그대로 또한 완성되는 그림엽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기대하는 것은 이 혼란의 시간이 지나 “심판 뒤의 초대장”같은 “선명한 엽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공간은 분명 모순이 사라진 진리가 머무는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기도하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에도
지문처럼 의미가 묻어 있다

기계처럼 사는 것도
소용돌이치는 시각의 좌표 위에

부표처럼 떠 있기에 느끼는 공허함이다

순간의 맛을 보려 해도
호수 위 빗방울처럼
무심한 세상 앞에 퍼지는
허상의 동심원이다
                          - 시 「세월」 전문

 

 

슬픔을 품고 먹구름을 몰고 오는 바람결

빗방울 하나하나 맺히는 아픔 느끼며

나뭇가지의 잎도 힘껏 흐른다
하늘을 우러러 이겨내야 할 숙명처럼
빗 뭉치의 타격은 내 안의 잠재된 응어리를 푼다

이 생의 전생에 씻어 낼 수 없을 만큼 아픈
상처들을 잎사귀는 빗방울에 내어 놓는다
하늘과 땅이 화해할 수 없는
비밀을 오늘 비로소 타협하려나 보다
빗방울을 흘러 보내며 내 비밀 또한 흐른다
수천 년의 한이 흐른다
수억 년의 한이 흐른다
내 속의 아픔이 시원해한다
                                      - 시 「비」 전문

 

어느 한순간일지라도 시간의 자국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들을 초강력 압축 파일에 담아 쌓아 놓았을 것이다. 지나가는 시간에도 지문처럼 의미가 묻어 있다는 시인의 생각처럼 기억의 파편 속에 숨어있는 추억의 흔적처럼 되돌아 회억할 수 있는 가치를 부여한다. 소용돌이치는 시각의 좌표 위에 부표처럼 떠 있던 삶의 공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 위를 걷는 사람들, 까닭일 것이다. 누구든 인생 전반이 파도 위의 부표처럼 떠있는 공허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호수 위 빗방울처럼/ 무심한 세상 앞에 퍼지는/ 허상의 동심원” 임을 자인하고 있다. 시 「세월」은 ‘공허와 허무함’으로 무심히 흐르는 세상을 한 몸에 짊어진 화자의 고뇌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거나 미친 듯이 기쁨을 맞이하는 순간의 행복을 위해, 그 또한 무심히 기다리는 기대가 있어 살아내고 있다. 반면 시 「비」에서 시인은 비가 세상에 내리는 까닭은 수억만 년의 한을 풀어내는 하늘과 땅의 화해라고 매듭짓고 있다. 슬픔을 품고 먹구름을 몰고 오는 바람결과 빗방울 하나하나에 맺히는 아픔을 확연히 풀어내기 위한 비 내림을 그려낸다. “하늘을 우러러 이겨내야 할 숙명처럼/ 빗 뭉치의 타격은 내 안의 잠재된 응어리를 푸”는 일이라고 한다. 가슴에 쌓인 한을 풀어내는 매개로 빗줄기는 지상에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생과 전 생에 씻어 낼 수 없을 만큼 아픈 상처들을, 하늘과 땅이 화해할 수 없는 비밀을 오늘 비로소 타협하려 한다는 것이다. 더하여 “빗방울을 흘러 보내며 내 비밀 또한 흐른다”는 이 내밀한 사연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수천 년의 한이 흐르고, 수억 년의 한이 흐르며 내 속의 아픔이 시원해한다”는 까닭 또한 궁금하다. 마치 태초의 신화 속 신비의 세상을 연상하게 하는 시편이지 싶다. 다만 오늘 박 시인이 제시하는 “하늘과 땅의 화해”는 하늘의 계시에 따르지 못한 땅의 혼돈에 대한 질책이라는 생각이다.

 

녹슨 못 하나 하나 펴서 박는 목공의 손놀림
새 못보다 녹슨 못이 좋다는 듯
모아 놓은 공구함의 녹슨 못들
세월의 흐름 속에 생기는 녹
물 먹은 존재로서의 녹
나무와 나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힘이 녹인가

녹슨 못 하나 찍어 논 흑백 사진
삶의 여정을 잘 소화한 인간의 모습이다
성한 곳 없이 부식된 못 하나에서 느끼는 카리스

신의 은총이 내린 인간의 성숙함
녹슨 못
                                     - 시 「녹슨 못」 전문

 

시 「녹슨 못」은 한 번쯤 사용되었거나 혹은 쓰임을 놓친 붉게 산화되어 빛이 변한 못을 말한다. 구부러지거나 오래 낡아 무딘 못이다. 새것을 마다하고 헌 녹슨 못 하나하나를 펴서 나무에 박는 목공의 손놀림에 시인의 시선이 경이롭게 머물고 있다. 모아 놓은 공구함 속의 녹슨 못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붉게 피어오르는 오명을 뒤집어쓴 “물 먹은 존재” 로의 소외된 한 사람이다. 어쩌면 저 공구함 속에서 스스로를 질책하며 버려진 죽은 목숨과 다름없었을지 모른다. “나무와 나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힘이 녹인가” 녹은 나무와 나무의 버러진 공간을 단단하게 엮는, 너와 나의 빈 가슴 하나로 채우는 사랑이다. 삶의 여정을 잘 소화한 인간의 모습이며 성한 곳 없이 부식된 못 하나가 침묵하는 카리스마는 신의 은총이 내린 인간의 성숙함과 다름없다. ‘녹슨 못’이 살아내는 삶의 재기는 듬직한 부활이며 아름다운 메시지이다.
박진호의 영문 번역과 함께한 이 시집은 늘 어둠을 사는 변두리 사람이나 실의에 가득한 소외된 사람들을 대신한 아픔이며 안타까운 질문이다. ‘무엇일까?’ 라는 모순된 삶의 햇빛 밝은 변화를 꿈꾸는 희망이 가득하다. 선하고 맑은 성품의 박진호 시인의 순수한 언술들이 부디 세상에 나아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한다. 조용한 첫 시집의 출간이 독자 모두의 가슴에 스미어 숲의 노래가 되었으면 기대한다. 눈꽃 날리는 겨울의 아침, 소나무 가지 위 다복한 눈꽃처럼 문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축하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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