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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작품평

[작품평] [가고 오네] 시집 작품평

 

이주현 시집 『가고 오네』 작품평

 

 

진중한 사고로 건져 올린,
삶의 단편들

 

- 작품평 | 지연희 시인

 

 

전통의 가치는 그 시대가 지녔던 개혁의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숨 쉬는 일이다. 문화예술 전반에 이르는 자존의 확립이며 한 그루 촛불을 밝히는 불꽃이었다. 서구의 문화며 문명의 유입이 시작되던 초기 현대시 유입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서정시 문학의 계보는 면면히 한국 시문학의 본류를 지켜오고 있다. 그럼에도 난해한 시어의 실험적 작품이나 구조로 현대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어느 비평가는 분노에 가까운 필설을 피력하기도 했다. 시문학의 정석은 ‘서정’의 아름다움에 있다는 지론이다. ‘서정시는 어떤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라고 하거나 ‘정돈된 형식으로 자신의 심리상태를 그저 단순히 표현할 수도 있다’는 방법론적인 시각의 잣대에 귀 기울여 보자면 오늘 첫 시집을 상재하는 이주현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진중한 감상의 표현으로 일관된 형식의 시들에서 읽을 수 있는 수법이라는 생각이다. 시인은 새것을 좋아한다. 누구도 쓰지 않은 언어 찾기,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깊은 산맥의 반짝이는 광맥을 찾기 위하여 험준한 산기슭을 오르고 있다.         

 

저 앞산 봉우리
휘감아 돌고 있는 구름 한 점
그는 뉘신가

어디선가 스쳐간 얼굴인 듯
며칠 전 꿈속에서 본 듯 아련하다

목화솜처럼 피어올라
수줍은 듯 말 못하고
우물쭈물 그냥 지나려는데

세월이 따라가며
묻고 또 묻는다
                        - 시 「그는 뉘신가」 전문


기해년
치맛자락 거머쥐고
담을 넘고 있다

구름 속에 쌓인 햇살
살짝 이빨을 내보이고

좌청룡 우백호 내려앉은
대광사 뒤뜰에 복수초

목화솜 같은 눈 속을 헤집고
노란 입술 내밀고
쪼르르 앞으로 나온다
                     - 시 「가고 오네」 전문

 

 

‘앞산 봉우리를 휘감아 돌고 있는 구름 한 점’을 바라보며 화자는 불현듯 누군가를 연상하고 있다. 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구름 한 점과 나와의 대면을 염두에 둔다. ‘그는 뉘신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시는 나와 무관하지 않은 어느 인물에 대한 관점으로 한 점의 구름을 한 사람의 이미지로 환유시키고 있는 것이다. 구름 한 점으로 마주친 ‘그’의 연상 작용은 주저할 것도 없이 특정한 인물을 향한 마음속 숨은 생각을 발현시킨다. ‘어디선가 스쳐간 얼굴인 듯/ 며칠 전 꿈속에서 본 듯 아련하다’는 것이다. 어젯밤 꿈속에서 마주친 ‘그 사람’을 향한 마음 설렘은 우정인 듯 연심인 듯 수줍어하고 있다. ‘목화솜처럼 피어올라/ 수줍은 듯 말 못하고/ 우물쭈물 그냥 지나려는데’ 놓아주지 않는 미련이 세월의 흐름을 잡고 머뭇거리게 한다. ‘세월이 따라가며/ 묻고 또 묻는다’는 것이다. 덧없이 흐르는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안타까워한다. 오늘이 지나면 그 오늘 속의 온전한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위어 가는 시간 속에는 어제가 놓쳐버린 수많은 의미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슬픔으로 놓여진다는 일이다. 사람을 알고 그와 나누는 아름다움은 삶을 지탱하는 위로가 된다. 또한 진실한 아름다움일 때 더욱 소중해지는 일이다. 수줍은 듯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상을 만나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야말로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이주현 시인의 시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미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복선은 없다. 하얀 빛깔의 순수가 전하는 단순 명료한 메시지로 어쩌면 면벽 기도 끝에 이루는 깨달음이다. 시 「가고 오네」는 이 시집의 제호이기도 하여 시인이 핵심적으로 말하고 싶은 울림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해년 한 해가 ‘치맛자락 거머쥐고’ 담을 넘고 있다. 마치 밤도둑이 귀중품을 들고 몰래 담을 넘어가듯 도망쳐 달아나는 한 해의 끝을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부정적 어둠의 대명사인 구름 속에 쌓인 햇살이 살짝 모습을 내보이자 ‘좌청룡 우백호 내려앉은/ 대광사 뒤뜰에 복수초’가 ‘목화솜 같은 눈 속을 헤집고/ 노란 입술 내밀고/ 쪼르르 앞으로 나온다’는 겨울에서 봄으로 잇는 계절의 흐름을 시인은 완곡하게 묘사하고 있다. 기해년 한 해가 담을 넘고 저물기 무섭게 경자년 새해가 햇살을 머금고 복수초 노란 꽃을 피우며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네가 가고 오늘의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가고 온다’는 일이란 ‘저물고 피어나는’ 일과 다름이 없다. 한 인생이 세상 밖으로 사라지고 한 인생이 세상 속으로 탄생하는 일이다. 까닭에 이주현 시집의 총체적인 메시지는 가고 오는 인생 전반의 의미를 89편의 시들 속에 모아 면밀히 반영하려 한다. 
         

           
웃자 
지구가 흔들리고
별들이 아자 아자 손뼉치고
달님이 너털웃음 웃고 나오게

가슴 열고
입이 귀에 닿도록
다이돌핀이 목젖 흔들고
박장대소 웃고 나온다

건강은 웃음을 업고 다니고
행복은 오지랖에 따라 다닌다

백세는 건강이 대세다
오늘도 내일도 웃으며 살자
                       - 시 「너털웃음」 전문


가자
누가 오라던 말던
남이야 가던 말던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가자

그곳에
눈물로 기다리는 망부석 하나
세월의 무게를 모래알로 세고
파도에 따귀를 맞아 가며
물세례를 받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가자 
                        - 시 「망부석」 전문

 


유유자적한 삶의 의미가 해탈의 경지를 넘고 있다. 시 「너털웃음」은 불자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의 세계관이 희로애락의 경지를 넘게 한다. 불의와 모순을 뛰어넘는 선자의 웃음소리가 지구촌을 흔들어 광활한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손뼉을 치고, 밤의 어둠을 밝히는 달님이 너털웃음을 웃게 된다. ‘웃자/ 지구가 흔들리고/별들이 아자 아자 손뼉치고/ 달님이 너털웃음 웃고 나오게’ 어떤 모순의 공간 속에서도 너털웃음 하나로 지구촌 모두를 웃음바다로 만들 수 있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시인은 꿈꾸고 있는 것이다. ‘가슴 열고/ 입이 귀에 닿도록/ 다이돌핀이 목젖 흔들고/ 박장대소 웃고 나온’다는 이 화창한 날의 환희를 시인은 염원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적지 않은 나이를 살고 있지만 매사에 긍정하며 젊음을 유지하여 내일을 여는 사고가 이주현 시인의 강점이다. ‘건강은 웃음을 업고 다니고/ 행복은 오지랖에 따라 다닌다// 백세는 건강이 대세다/ 오늘도 내일도 웃으며 살자’는 시 「너털웃음」 은 누구보다 시인이 고령의 시니어들에게 제시하는 당부의 제언이다. 백세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우선된 일은 삶의 질이며 삶의 가치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가자/ 누가 오라던 말던/ 남이야 가던 말던/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가자’ 시 「망부석」의 첫 번째 연의 구조이다. 바다 건너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기다리다가 끝내 돌이 되었다는 여인의 화신이 「망부석」이 되었다는 신화를 만나러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망부석이 되었다는 애절한 아내의 사연을 조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곳 망부석이 감내하고 있는 눈물겨운 현실을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조망해 내는 일이다. 단호한 어조로 시작되는 첫 행의 의미가 집요하다. ‘가자, 누가 오라던 말던, 남이야 가던 말던,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가자’는 곳 망부석이 세워진 바닷가에 닿기 위한 결의가 선명하다. 지난한 기다림의 슬픔을 위무하기 위한 시인의 몸짓과 처연하게 온갖 풍상을 감내하고 있는 ‘망부석’이 경건하게 클로즈업 되고 있다. ‘그곳에/ 눈물로 기다리는 망부석 하나/ 세월의 무게를 모래알로 세고/ 파도에 따귀를 맞아가며/ 물세례를 받고 있다’는 그를 만나러 가자는 가엾은 마음 가득 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깊은 얼음 속에
단풍잎이 피어있다
숨마저 멈춰버린 공간에서
꿈을 꾸고 있다

수정 속의 붉은 루비처럼 
그대 목에 걸려 있는
불같은 사랑이다
영원을 약속하는 꿈

은하계 너머
우주의 기운은 넘쳐와
붉은 잎은 
뜨겁게 타고 있다
                     - 시 「멈춰버린 공간」 전문


찬란한 노을 뒤에
햇살이 머뭇거린다
세월이 언제
내 키를 훌쩍 넘었나

백세는 나를 잡고
놓아줄 생각 없고
하늘 끝자락에 걸어 두고 온 인연
백발이 펄럭인다

어느 행성 좁은 골목에서
아직도 기다리는가
창 밖에 너를 두고
내 어찌 잠을 청할까
                      - 시 「하늘의 인연」 전문

 


시인의 상상력은 마치 생명의 탄생을 주도하는 여인의 자궁 속처럼 위대한 존재의 가치를 발현시킨다. 세상에 없는 물질의 질서를 변형시키고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하는 신비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그 깊은 얼음 속에/ 단풍잎이 피어있다/ 숨마저 멈춰버린 공간에서/ 꿈을 꾸고 있다’ 시 「멈춰버린 공간」의 첫 번째 음절이다.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꽁꽁 얼어버린 개울물 유리 거울 속에 비추인 단풍잎을 한 포기 꽃으로 피워내는 도약의 경지가 아름답다. 반짝이는 시어의 아름다움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다. 멈추어 버린 개울물과 멈추어버린 단풍잎의 순정한 화인이 꿈결 같다. 수정 속의 붉은 루비처럼 그대 목에 걸려있는 불같은 사랑이다. 영원을 약속하는 꿈의 공간 속 멈춰버린 한 폭의 꽃이 향기로 머문다. ‘은하계 너머/ 우주의 기운은 넘쳐와/ 붉은 꽃잎은/ 뜨겁게 타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침묵의 세계 속에 잠들어 있다. 
시 「하늘의 인연」을 분석하자면 다소는 인연의 실체를 가늠해 내기가 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하늘 끝자락에 걸어 두고 온 인연’인 대상을 가늠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언젠가 화자는 하늘 끝자락에서 ‘너’라고 지칭되는 인연과 조우했다는 사실이 성립되는 과정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백발이 펄럭이는 인연의 너’라고 한다면 너의 존재는 ‘전생’에서 만나 헤어진 ‘네’가 아닐까 유추하게 된다. 다시 현실 속의 ‘나’로 돌아와 흐르는 시간의 간극을 재단해 본다. ‘찬란한 노을 뒤에/ 햇살이 머뭇거린다/ 세월이 언제/ 내 키를 훌쩍 넘었나’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푯대가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어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세는 나를 잡고/ 놓아줄 생각 없고/ 하늘 끝자락에 걸어 두고 온 인연은/ 백발을 펄럭’이고 있음을 확인한다. 다만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너’의 하늘 인연이 어느 행성의 좁은 골목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이 시의 미묘한 관측이라는 점이다. ‘창밖의 너를 두고 내 어찌 잠을 청할 수 있을까’ 싶은 그리움을 성립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날고 싶어 퍼덕이는 어깨 위에
무거운 짐 내려놓고
붙어 있는 먼지도 털었더니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다

햇살이
옆구리 간지릴 적마다
세월의 옆구리를 조금씩 빌린다

웃음을 빌렸더니
덤으로 행복하다
                         - 시 「날개」 전문


금붕어 한 마리 처마 끝에 매달려
달그랑 달그랑
바람결에 팔랑인다

큰스님 불경소리
세상근심 녹아내리고

고요한 마음자리
촛불마저 멈춰 서는데
뜰 앞에는 참새 소리만 요란하다

사리탑 돌고 돌며
마음이 숙연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참회와 감사 부처님께 올리고
돌아서 오는 발길
가을하늘처럼
맑고 시원하다
                            - 시 「수덕사 풍경소리」 전문

 


시 「날개」를 감상하며 ‘마음 비우기’로 이룩한 욕심의 근원이 얼마나 참담한 나락이었는가를 공감하게 한다. 혼돈의 구렁에 빠져 천근 고뇌의 짐을 지고 살아온 사람만이 체감할 수 있는 결과이다. 비상하고 싶은 속성으로 전신을 무장한 ‘날개’의 어깨 위에 쌓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붙어있는 먼지마저 털어내었더니 잠자리 날개처럼 온몸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이 얼마나 거룩한 삶의 축복인지 신비로운 깨달음이다. 해탈의 카타르시스에 이르러 정화되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날개’와 ‘욕심’은 정비례한다. 욕심이 날개를 만들고, 날개가 욕심을 부른다. 그러나 이처럼 어떻게 매일 데 없는 마음의 가벼움으로 세상 사는 법을 터득하였을까. 이주현 시인의 시어가 전하는 의미는 정신적 안위에 머무는 정화의 기쁨일 것이다. ‘햇살이/ 옆구리 간지릴 적마다/ 세월의 옆구리를 조금씩 빌린다// 웃음을 빌었더니/ 덤으로 행복하다’ 가볍고 가벼운 날갯짓으로 천국의 아름다움을 미리 체득하고 있다. 행복에 묻혀 사는 날은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매사에 웃음을 부르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든다는 유유자적한 여유의 소산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성찰의 아이콘을 지니고 산다. 시 「수덕사 풍경소리」에 스며들다 보면 세상 근심에 쌓인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보이고 큰스님 불경소리에 세상 근심 내려놓는 고요한 마음자리에 든다. 아웅다웅 살아온 일상이 다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대웅전 처마 끝에 달그랑 달그랑 매달려 바람에 팔랑이는 금붕어 한 마리가 예사롭지 않은 일임을 배운다. ‘고요한 마음자리/ 촛불마저 멈춰 서는데/ 뜰 앞에는 참새 소리만 요란하다’ 수덕사의 고요한 경내와 시인의 침묵 속 심경이 참새 울음소리로 대립된다. 사리탑을 돌며 숙연해지는 마음이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종내에는 참회와 감사를 부처님께 올리고 돌아오는 시인의 발길이 가을 하늘처럼 맑고 시원하다. 깨달음은 무엇이고 눈물을 흘리는 ‘정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인간의 정신세계에 이와 같은 때묻어 오염된 마음을 세정하는 참회의 장치가 없었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지. 시 「수덕사 풍경소리」는 나약한 인간의 허물을 씻는 세심정(洗心亭)이다.

 


꿈을 꾸다 돌아보니
재잘거리던 제비는 날아갔고
햇살은 개울물에
푹 빠져 질팡거리고
시리도록 맑은 물에
흰 다리 새우 줄행랑 치고 있다

웃음은 허공에서 나풀거리고
가재 잡다가
집게다리에 물린 손가락 지금도 아린데

세월이 등을 다독거리며
눈시울 붉힌다
                               - 시 「꿈」 전문


빈방 침대에
햇살이 내려와 쉬고 있다

화병에 백합 향기는 방 안 가득하고
코끝은 향기를 빨아들이고
바람은
빨좀하게 열린 창문 사이로
날개를 접고 들어온다

산뜻한 시어들
꼬불꼬불
백지 위를 걸어 다니고
산들바람은 책장을 넘긴다
                             - 시 「빈방」 전문

 


시 「꿈」은 눈 깜박할 사이에 돌아 본 시인의 삶의 내력이며, 그 질곡의 일상 속에서 밀물처럼 흘러가 버린 자화상이다. 자식들은 저마다 독립하여 분가해 버리고, 젊음은 어느 사이 개울물에 빠져 질팡거리는 동안 휜 다리로 새우가 된 육신은 시리도록 맑은 물에 줄행랑 치고 있는 중이다. 덧없이 흘러간 일생의 편린들이 이 시를 그려내는 화폭이기도 하다. 어이없는 웃음은 허공에서 나풀거리며 잃어버린 나를 찾고 있다. 꿈과 희망을 향해 도약하던 손가락은 집게다리에 물려 지금도 쓰리고 아리다. 꿈을 이루려 했으나 이루지 못한 채 상처만 남아 아프다. 다만 ‘세월이 등을 다독거리며/ 눈시울 붉힌다’는 소회를 유감없이 들려준다. 일장춘몽과 같은 인생의 헛되고 허전한 마음을 한 편의 드라마로 면밀하게 짚어주었다. 산다는 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전투와도 같은 싸움이지만 돌아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물거품임을 극명하게 그려주었다. 깊고 진중한 사고思考로 인생의 전방위적 단면들을 조망하였다. 세월이 등을 도닥거리며 눈시울 붉히는 측은지심이 따뜻하다.
시 「빈방」은 덩그러니 비어있는 넓은 공간이 전해주는 쓸쓸함이 먼저 시야에 들어선다. 아무도 없는 방이다. 그리고 이 시의 주인인 시인이 슬그머니 빈방을 침범하여 방이 지닌 풍경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침대가 놓여있고 햇살이 내려와 쉬고 있다. 침대 위 환한 빛을 안고 누운 햇살이 따뜻한 봄볕을 동반한 듯 어여쁘다. ‘화병에 백합 향기는 방 안 가득하고/ 코끝은 향기를 빨아들이고/ 바람은/ 빨좀하게 열린 창문 사이로/ 날개를 접고 들어온다’ 화병과 백합, 방안 가득한 향기, 코끝은 향기를 빨아들이고, 바람이 열린 창문 사이로 날개를 접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빈방은 어느새 왁자한 존재들의 숨소리로 비움을 지우고 있다. 비로소 산뜻한 시어들이 꼬불꼬불 백지 위를 걸어 다니더니 산들바람이 책장을 넘기며 시 낭송을 하고 있다. 빈방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빈방은 빈방이 아니었다.
이주현 시인의 시 읽기를 여기서 접는다. 단정한 차림의 시편들을 감상하며 첫 시집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취하곤 했다. 최선을 다한 열정의 결과물이다. 편편이 드러나는 불심 어린 기도가 큰 깨우침으로 삶의 까닭을 짚어주고 있어 불자의 견고한 자세를 체득할 수 있었다. 시인은 고비 사막과도 같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수행자이어야 한다고 했다. 더 깊은 시어를 생산하는 내일을 기대하며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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