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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인터뷰

[인터뷰] 지극하긴 하였는가. 장석남 시인

 

 

장석남 시인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 『물의 정거장』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 

김수영 문학상, 편운 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등 수상.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부교수

 

 

 

Q. 시인으로서의 출발점은?

아무리 다잡아도 공부는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시절,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하다 포기한 시간들, 그것을 일러 어떤 살(煞)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세상에 대한 적의가 문학을, 시를 만났을 때 순진하게도 그것을 통해서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어떤 정신적 고통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고 앙갚음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모른다.


고요에 닿아보려는 즐거운 고투
풍경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문장보다는 색채거나 음표여야 더 알맞지 않을까 싶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틀어놓고 앉아 있으니 감나무가 움직임 하나 없이 귀를 기울이는 듯 고요하다. 그 많은 잎들이 모두 귀가 되어 나의 창 쪽, 음악 쪽에 기울이는 듯싶다. 난 이러한 순간을 삶의 순간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내 시의 지붕은 사랑이다. 사랑이고 바람이고 풀이다. 사랑을 나누는 모든 것으로 비를 가리고 눈을 가린다."


Q.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에 대하여
적적해지는 것은 내 오랜 취미다. 그 취미가 나를 이끌어 간다. 적적함이 직업이라도 좋겠다. 적적하지 않고서야 이 세상을 어디에 놓고 바라볼 것인가. 적적함은 맑은 거울이요 명쾌한 저울이요 사랑의 반석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예의 그것, 어쭙잖고 가식적인 연못가에 앉아 연못물을 움켜서 건너편 돌멩이에 뿌리는 일이다. 그래서 그 돌멩이를 다른 물건으로 만들어 적적함을 불러오는 일이다. 그것은 지루하지 않고 시원하며 끝없는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


Q.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몸(체험)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 울림, 파동이 의식에까지 미칠 때 좋은 시다. 그때 그 시는 그 시와 관계된 생을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 아니 엄밀하게는 그래야만 비로소 시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시에 관한 일체의 말은 다 필요 없는 이야기다. 그저 시가 ‘시’였다면 ‘이미’ 그러했을 것이므로.


시인은 묻는다.
죽음이 없다면 시가 있을까? 미리 죽음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시가 필요할까? 모든 예술이 필요할까? 종교가? 나는 이 질문이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내 시의 주춧돌들이 죽음 혹은 죽음 이후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그러니 시는 우회적이요 우회다.

                      詩法
시에도 자원이란 게 있다면 그건 갈증
그건 아무도 모르게 영혼을 찢어놓는,
             남은 모르는 갈증
                      갈증
                     (생략)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시인의 말

모순, 수많은 모순 속을 왔다.
사랑이 그렇고 사는 일이 그랬다. 눈보라 같았다.
말이 생기기 이전의 저 고대(古代)의 융융한 세계를 꿈꾸
어본다.
삶이 덜 모순적이었으리라. 훨씬 넓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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