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콘텐츠/작품평

[작품평] [팝콘이 터질 때] 시집 작품평

이주현 시집 『가고 오네』 작품평

 

 

 

시인의 고뇌와 시인의 사유에
가까이 서서

- 작품평 | 지연희 시인

 

문학은 인생의 근원적 가치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이다. 꽃이 계절의 질서에 맞추어 피고 지는 일처럼 한 편의 시에 내장되어진 의미들의 정서가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팩트인지도 모른다. 가냘프기 짝이 없는 인간의 육신이 정신의 태도로 지배되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시는 인간의 정서를 다룬다고 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시인 로빈슨(E.A.Robinson, 1869~1935)은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려 한다고 했다. 시는 아이디어, 의미, 태도, 정서 등으로 그 의미를 강조하려는 견해로 정의하려 하기 때문이다. 윤복선 시인의 제2시집 출간의 의미도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깊은 통찰이며 관심이다. 
 

 

거미가 집을 비웠다
지난여름 풍선처럼 통통한 배를
한껏 내밀고 네트워크 촘촘히 깔더니
서슬 퍼런 눈빛 팔 다리
허세라도 좋을 기백 어디 가고
바람에 춤추는 찢겨진 거미집
구석구석 먼지가 앉아서
안쓰러운 추억이
철 지난 스카프처럼 펄럭인다
그 틈새로 겨울 눈 싸라기가
거미의 지난 시간을 일기로 남기고
그 무게조차 겨운지

구멍 난 
일그러진 동그라미 사이로 푸른 하늘이
기꺼이 들어왔다
- 시 「빈집」 전문

 

수변 연잎은 수많은 팔레트
물감을 짜놓고 가을을 채색하려 준비하고 있다.
붉은 꽃잎이 모두 떨어져
아니 온 듯 가볍게 낮달이 걸리고
비우고 채우는 찻잔처럼
오늘도 여여한 하루가 당신 앞에 놓였다.
아바타 영화 첫 장면
I see you
나는 당신이 보입니다.
그런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저만큼 올라간 파란 하늘에
커튼으로 내리는 춤추는 가을 
새벽
- 시 「가을은 시작되고」 전문

 

 


집은 지친 일상의 고단함을 편안함으로 씻어주는 공간이며 내일을 기약하는 꿈과 희망을 키우는 원천이다. 시끌벅적한 식구들의 대화가 삶의 윤기를 머금게 되는 안식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시 「빈집」은 어제와 오늘의 선명한 현실로 대립되는 폐허의 잔재를 안고 있으며 이곳은 황량한 공허의 무덤과도 같다. ‘거미가 집을 비웠다/ 지난여름 풍선처럼 통통한 배를/ 한껏 내밀고 네트워크 촘촘히 깔더니/ 서슬 퍼런 눈빛 팔 다리/ 허세라도 좋을 기백 어디 가고/ 바람에 춤추는 찢겨진 거미집’이다. 풍선처럼 통통하게 배를 내밀던 거미의 허세는 어디 가고 흔적 없이 바람에 찢겨져 일그러진 구멍 난 거미줄만 펄럭이고 있는 공간이 시 「빈집」이다. 주인을 잃어버린 빈집은 분노한 파고를 이기지 못한 범선의 쓸쓸한 최후일까. 평생 고향을 지키며 자식들 대처로 떠나보낸 노모의 융숭한 생의 마침표일까. ‘구석구석 먼지가 앉아서/ 안쓰러운 추억이/ 철 지난 스카프처럼 펄럭’이고 있어 처연하다. 하지만 안쓰러운 시인의 시선은 마침내 일그러져 구멍 난 거미줄 사이로 푸른 하늘을 기꺼이 끌어 앉히고 있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깊은 낭떠러지의 절망 속에서 견디어 일어서는 희망처럼, 씨앗 하나가 자신을 온전히 버림으로 하여 새 생명을 키우듯이 빈집은 새 생명의 힘으로 우뚝 서리라 믿고 있다. 시 「가을은 시작되고」는 계절의 유유한 변화에 대하여 ‘아니 온 듯 가볍게 낮달이 걸리’는 당신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아련하게 그려지고 있다. ‘수변 연잎은 수많은 팔레트/ 물감을 짜놓고 가을을 채색하려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순간에 스쳐 지나간 바람처럼 돌연 한 행의 간격 속에 붉은 꽃잎이 모두 떨어져 대지에 흩어지는 긴장감 속으로 시인은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 공간 속에서 ‘오지 않은 듯 만나게 되는 낮달’의 존재는 이 시의 절대성을 지닌 인물로 성립된다. 오지 않은 듯 희미하게 보이는 당신이다. ‘I see you/ 나는 당신이 보입니다.’ 비우고 채우는 찻잔처럼 오늘도 어제와 같은 변함없는 하루가 당신 앞에 놓여 있음으로 당신을 바라볼 수 있고, 그런 하루가 되기를 기대하며 하루의 문을 열고 있다. 저만큼 높아진 파란 가을 하늘, ‘파란 하늘에/ 커튼으로 내리는 춤추는 가을/ 새벽’의 ‘당신’과 내가 드리는 기도이다.

 

 

심장소리가 시계 초침 소리가 너의 숨소리가
날마다 태양을 밀어 올려 종소리를 낸다
직박구리는 나비 대신 동백꽃을 피우고
빗물 받은 연잎에 개구리알은
올챙이가 될 수 있을까
애벌레 번데기는 나비의 탈바꿈 아바타
나비는 다시 번데기의 시간을
돌탑에 달고
해질녘 동박새가 녹차밭에 둥지를 트는 것도
홍여새의 배설물에서 
겨우살이가 자라는 것도
오늘 우리가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종소리였다
- 시 「너의 숨소리」 전문

 

용서 고속도로 하운산 터널
상어가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기다린다
자동차는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간다
빛은 사라지고
천장의 양옆에 상어 이빨처럼 형광등이 하얗다
가끔은 등이 나간 썩은 이빨 사이로
산소가 들어온다
달리는 찰나가 안전해야만 하는 것은 
신이 결정할 문제인가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를 풀어가던 GPS도 끝이다
차창에 비친 내 모습
컴퓨터 자판기에서 써 내려가는 인생의 장편소설
상어가 입을 다물기 전
정해지지 않은 결말이 궁금하다
- 시 「터널」 전문

 

 


시 「너의 숨소리」를 감상한다. 첫 행으로 수식한 심장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와, 너의 숨소리의 근원은 살아 있음으로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울림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소리, 소리, 소리가 증명하는 생존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 소리가 있어 날마다 태양을 밀어 올려 종소리라는 청각적 무게로 생명의 존재를 확증시킨다고 믿는다. ‘네가 있어 나는 존재한다’는 따뜻한 사랑과도 같다. 동백 꽃잎에 서성이던 직박구리가 나비 대신 동백꽃을 피우지만, ‘빗물 받은 연잎에 개구리알은/ 올챙이가 될 수 있을까’ 근심하고 있다. 그러나 ‘애벌레 번데기는 나비의 탈바꿈 아바타/ 나비는 다시 번데기의 시간을/ 돌탑에 달고’와 같이 수도승의 면벽기도에 드는 것이다. 너를 위한 생명으로 일어서는 신비로운 존재의 탄생을 이어가는 몸짓의 눈부심이다. ‘해질녘 동박새가 녹차밭에 둥지를 트는 것도/ 홍여새의 배설물에서/ 겨우살이가 자라는 것도/ 오늘 우리가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종소리’의 위대한 질서임을 이 시는 들려주고 있다. 시 「터널」은 용서 고속도로 하운산 터널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마치 상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듯 기다리는 터널은 진공청소기처럼 즐비한 자동차 행렬을 빨아들이고 있다. ‘빛은 사라지고/ 천장의 양옆에 상어 이빨처럼 형광등이 하얗다/ 가끔은 등이 나간 썩은 이빨 사이로/ 산소가 들어’오고 있다. 빛은 사라지고, 어둠의 공간이다.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나락으로 비틀거리기 쉬운 추락의 유혹이 난무한 곳이다. ‘달리는 찰나가 안전해야만 하는 것은/ 신이 결정할 문제인가/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를 풀어가던 GPS도 끝이다.’ 오직 감각의 미세한 촉감만으로 순행해야 할 뿐이다. ‘차창에 비친 내 모습/ 컴퓨터 자판기에서 써 내려가는 인생의 장편소설/ 상어가 입을 다물기 전/ 정해지지 않은 결말이 궁금하다’는 극도로 난해한 위험지대가 어둠의 터널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고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을 조용한 리듬으로 시인은 감당하고 있다.
   

 

흔들린다
바람이 가르는 길 따라 혼잣말처럼 수런대는 말들이
줄행랑을 치듯 빠져나간다
가슴이 가슴으로 부비는 몸짓은
휘어졌다가 넘어질 듯 꺾인 허리를 곧추세우고
풀어진 단추를 여민다
밤새 과녁 없이 쏘았던 화살이
어디쯤에서 멈추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일 년을 기다려 열흘만 반짝이는
반딧불을 찾아 흔들리고
수변에 핀 연꽃 향기에 흔들리고, 흔들리고
비밀은 마음의 뿌리에 있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얼마나 길고 질긴지
태풍이 불어도 뽑히지 않을 자신감
그래서 언제나 흔들릴 수 있었다
- 시 「갈대」 전문

 

고요가 스미는 보자기 한 장
하얗게 펼치면 봄이 오는 꽃밭이 있다
어릴 적 도시락을 감싸던 보자기
그때는 봄이 숨어 있는 줄 몰랐다
오늘 반찬은 뭘까
빨리 먹고 고무줄놀이할까 공기놀이할까
노란 자수 꽃은 민들레
분홍은 패랭이
펼치기만 하면 톡 톡 톡 꽃이 핀다
어머니가 만드신 작은 정원
사시사철 꽃이 피는 꽃밭
지금은 액자 속에서 따뜻하게 웃고 있다 
- 시 「작은 정원」 전문   

 


갈대는 한정 없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러나 꺾이지 않는 강인한 존재가 갈대의 속성이다. 시 「갈대」는 말의 상처에 흔들리는 아픔이다.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의 흔들림은 종래에는 깊은 상처로 자신의 정체성까지 내어 버리는 곤경에 빠지고 만다. ‘바람이 가르는 길 따라 혼잣말처럼 수런대는 말들이/ 줄행랑을 치듯 빠져나간다’는 걷잡을 수 없는 소문의 허상들이 ‘가슴이 가슴으로 부비는 몸짓’으로 춤을 추며 부풀어 감당할 수 없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갈대의 속성이 그러하듯 ‘휘어졌다가 넘어질 듯 꺾인 허리를 곧추세우고/ 풀어진 단추를 여미’는 화자의 모습에 안도하게 된다. ‘밤새 과녁 없이 쏘았던 화살이/ 어디쯤에서 멈추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어 쉬이 꺾이지 않는 갈대의 강인함을 생각하게 한다. 일 년을 기다려 열흘만 반짝이는 반딧불을 찾아 아름다운 자연 현상에 취하고 호숫가에 핀 연꽃 향기에 흔들리고, 흔들릴 수 있는 아름다운 흔들림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넘치는 까닭을 시인은 비추어내고 있다. ‘비밀은 마음의 뿌리에 있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얼마나 길고 질긴지/ 태풍이 불어도 뽑히지 않을 자신감/ 그래서 언제나 흔들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말의 흔들림에 휩쓸려 고뇌하던 아픔이 깨달음의 깊이로 치유되는 과정이다. 시 「작은 정원」은 보자기 하나로 펼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달려가게 된다. 어머니가 싸 주시던 도시락을 감싸던 보자기의 꽃밭이다. 고요가 스미는 보자기 한 장을 하얗게 펼치면 봄이 오는 꽃밭이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그때는 봄이 숨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다만 도시락을 빨리 먹고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하기에 바빠 정성 들여 싸주신 어머니의 도시락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한다. 보자기를 펼치기만 하면 ‘노란 자수 꽃은 민들레/ 분홍은 패랭이’ 펼치기만 하면 톡 톡 톡 꽃이 핀다. ‘어머니가 만드신 작은 정원/사시사철 꽃이 피는 꽃밭/ 지금은 액자 속에서 따뜻하게 웃고 있다.’ 어린 딸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 가득한 작은 도시락 보자기 정원은 그 어머니의 나이를 웃도는 딸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향기로 머물러 모성의 가없음을 들려주고 있다.

 

 

화살나무 y자 가지 사이
주먹만 한 솔새 빈집에
하얀 낮달이 잠들어 있다
계곡물 따라 꽃잎이 떨어지면
그 소리에 잠 깨어
으름난초 붉은 노란 상사화 꽃길
온 천지에 뿌려 놓고
산 까치가 울어도
바람이 깨워도
내가 훔쳐보고 있어도
묵묵 잠이다
- 시 「솔새 둥지」 전문

 

한 방울씩 모아 마음의 호수를 만들었다 토란 잎에
흘러가는 구름과 이름 없는 얼굴 하나 담겨있다, 그 호수에는
멀리서 보면 푸르름 위로 풀잎들이 너울거린다, 그 바람으로 
밤 깊어 가는데 젖어드는 풀벌레 소리 아우성이다, 이 어둠에서 
한몸 연리지 나무 반쪽이 시들거린다, 이름 없는 벌판에서
온전히 가엾게 여기는 것은, 수행의 완성이라 했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무릎 꿇은 오늘 하루 
별 하나 지키며 살고 싶다 여기서 
- 시 「비 개인 날」 전문  

 


시 「솔새 둥지」는 화살나무 y자 가지 사이 주먹만 한 솔새 빈집에 들어있는 낮달의 깊은 잠을 동심의 스토리로 전개하고 있다. 자연의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펼쳐내는 맑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그 위에 머무는 꽃잎까지 순수의 결로 배치하여 한때의 고요를 장식하고 있다. 솔새의 둥지에 머물러 잠이 든 낮달의 단잠은 잠시 계곡물소리에 깨었다가 으름난초 붉은 노란 상사화 꽃길 온 천지에 뿌려 놓고 다시 묵묵한 잠에 든다. ‘으름난초 붉은 노란 상사화 꽃길/ 온 천지에 뿌려 놓고/ 산 까치가 울어도/ 바람이 깨워도/ 내가 훔쳐보고 있어도/ 묵묵 잠’에 든다. 주먹만 한 솔새의 빈집에 난데없이 찾아든 낮달의 잠은 산자락 화살나무 y자 가지에 깃든 거룩한 고요이며 평화로운 기도이다. 다음 시 「비 개인 날」의 시인은 별 하나 키우며 살고 싶다고 한다. ‘한 방울씩 모아 마음의 호수를 만들었다’는 언어의 내력은 토란 잎 위에 흘러가는 구름과 이름 없는 얼굴 하나 담아 놓는다는 의미의 결합이다. 그 호수(마음의 집=얼굴 하나가 사는 집)는 멀리서 보면 푸르름 위로 풀잎들이 너울거리고 있을 만큼 싱그럽다. 또한 밤은 깊어 가는데 젖어드는 풀벌레 소리가 아우성거리는 혼돈으로 가득하다. 이 어둠에서 연리지 나무 반쪽이 시들거리는 아픔으로 시인은 편치가 않다. ‘이름 없는 벌판에서/ 온전히 가엾게 여기는 것은, 수행의 완성이라 했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무릎 꿇은 오늘 하루/ 별 하나 지키며 살고 싶다’는 까닭을 유추해 본다. 슬픔, 혹은 가엾음이기도 한 마음 한 방울씩 모아 호수를 만든 화자는 흘러가는 구름과 이름 없는 얼굴 하나에 대한 융숭 깊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름 없는 벌판에 서 있는 가여운 존재들을 향한 손 내어주는 생각 속의 일을 온전히 지키려 한다. 너울거리는 풀잎들의 아우성이 들리고 그 어둠 속 별 하나 지키며 살고 싶은 아름다운 바람이다.

 

 

어린 시절
비가 그치고 햇빛에 무지개가 떴을 때
한쪽 끝은 꿈을 꾸는 동심에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무지개의 과학적 원리를 처음 알았던 날
하루 종일 까닭 없이 허전했다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아버린 것처럼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처럼, 

저녁이 되면
밤하늘 총총히 박혀 폭죽처럼 쏟아질 듯 깜박이며 웃어 주던 별무리에게
슬픔이 뭐냐고 물어보면 기쁨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하고 
숨어버렸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을 잃어가는 우리는
기억을 잃어가는 우리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슬픔이 터져도
홀로 반짝여서 이름을 갖는 별처럼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해
- 시 「별처럼」 전문

 

간밤에 나쁜 꿈을 꿨어
나지막한 신음인지 혼잣말인지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어제의 파편들이 널브러진 거실을 깨웠다.
기우뚱 슬리퍼 끄는 소리가 몸무게를 말한다.
납작한 팝콘 봉지를 찾아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붉은 등이 충혈된 눈처럼 켜지고
다르게 갈리는 운명의 시간이 되어 
봉지가 부풀고 가슴에 박혔던 둔탁한 소리로 터진다. 
기다림의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아드레날린이 쉼 없이 펌핑 되는 아침 
아니 오전이 끝나기 2분 전 
뽀얀 팝콘이 보글보글 빠글빠글 
비누 거품 소리를 내고 사라진다
버리고 온 것들과 
앞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골라내듯
터지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를 날카롭게 쪼아보면서 
늦었지 뭐 할 수 없어 
오늘도 내가 내게 말을 걸어 
짭짤한 팝콘을 불안한 마음만큼 
입안 가득 채운다
- 시 「팝콘이 터질 때」 전문

 

 


도심에 사는 아이들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거나 별을 세던 시절의 아름다운 정서를 알지 못한다. 미세먼지며 황사로 뒤덮인 하늘에서 별무리가 반짝이며 빛을 발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지 모른다. 문명의 이기는 맑고 깨끗하던 청정한 세상을 오염이 난무한 세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으며 급기야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에 생명이 구속되는 현실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 「별처럼」은 자연현상이 보여주는 순수한 아름다움의 지난날처럼 어떤 역경 속에서도 때 묻지 않은 영혼을 지니며 꿈과 희망을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비가 그치고 햇빛에 무지개가 떴을 때/ 한쪽 끝은 꿈을 꾸는 동심에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무지개의 과학적 원리를 처음 알았던 날/ 하루 종일 까닭 없이 허전했다/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아버린 것처럼/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처럼’ 신비로운 꿈의 세계를 가꾸던 한 소녀의 아름다운 영혼을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오늘 세월이 흐르고 그 소녀는 ‘지금 이 순간/ 시간을 잃어가는 우리는/ 기억을 잃어가는 우리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슬픔이 터져도/ 홀로 반짝여서 이름을 갖는 별처럼/ 우리는 꿈’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어떤 어두운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내일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가을 날 속절없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쉬이 포기하지 말라는 바람이다. 시 「팝콘이 터질 때」는 아침을 맞는 보편적 일상의 편린 속에서 삶의 무게를 조율하는 매우 섬세하고 유니크한 몸짓으로 시작하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간밤에 꾼 나쁜 꿈을 나지막한 혼잣말로 시작하여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어제의 파편들이 널브러진 거실로 진입하는 동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기우뚱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고 납작한 팝콘 봉지를 찾아 전자레인지에 넣고 있다. 레인지 속 붉은 등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켜지고, 봉지가 부풀어 서로 다른 운명의 시간으로 갈리는 팝콘들의 소리가 가슴에 박혔던 둔탁한 소리로 터진다. 아드레날린이 쉼 없이 펌핑 되는 아침, 아니 오전이 끝나기 2분 전이다. 뽀얀 팝콘이 보글 보글 빠글빠글 비누 거품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이제 여인의 시선이 멈추고 비로소 시인의 가슴에 쌓인 하고 싶은 말의 문을 풀어내고 있다. ‘버리고 온 것들과/ 앞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골라내듯/ 터지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를 날카롭게 쪼아보면서/ 늦었지 뭐 할 수 없어/ 오늘도 내가 내게 말을 걸어/ 짭짤한 팝콘을 불안한 마음만큼/ 입안 가득 채운’다는 것이다. 버리고 온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 터지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를 날카롭게 쪼아보면서 ‘늦었지 뭐 할 수 없어’라는 어깨에 지고 있던 마음의 짐 하나를 내려놓고 있는 것이다. 터지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들에 대한 연민이다.
윤복선 시인의 제2시집 읽기를 통하여 시인의 고뇌와 시인의 사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질 공인된 한 시인의 부단한 시의 역사를 예감하게 한다. 한 우물을 파는 장인의 걸음과 같이 멈춤 없는 매진이야말로 바람직한 소기의 성과를 약속받는다는 사실이다. 우선은 시인 스스로의 기쁨과 나아가 내 시가 짊어진 운명대로 세상에 팔을 뻗어 아름다운 한 편의 독자를 향한 위로가 된다면 시인의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몫에 부응하는 일이다. 겨울이라는 시간을 관통하여 맞이한 이 화사한 봄꽃 만발한 날의 출간이어서 더욱 향기롭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