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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작품평

[작품평] [초록의 눈] 시집 작품평

김근숙 시집 [초록의 눈] 작품평

 

 

 

 

놀라운 인내와 관성으로

견디어 일어서는 성자의 모습

 

- 작품평 | 지연희 시인

 

시를 쓰는 데 있어 그 구조적 유형은 최소한 30여 종의 갈래로 구분되어 있다. 까닭에 어떤 시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구상은 절대한의 필요 불가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다양한 감성의 가닥으로 시인들은 자신이 선택한 의도에 대한 심도 깊은 의미를 세부적으로 설계하여 시의 집을 짓는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대개는 서정시의 기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지만 서사시에서 풍경시, 사물시에 이르기까지 집필의 방법론에 대한 구성을 고뇌하고 있다. 2019년 계간 『문파』 문학 신인상 시 부문에 추천되어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김근숙 시인의 첫 시집 「초록의 눈」의 출간을 준비하며 김 시인의 시 71편을 탐독하게 되었다. 문학은 그 작가의 정신이며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문율의 규칙과도 같아서 ‘작품은 그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다. 시집 한 권에서 보여준 시인의 시는 시인의 정신적 산물이라는 논리를 부인할 수 없다. 김근숙의 첫 시집에서 추적된 메시지는 모순의 늪에 빠진 나약한 벌레 한 마리를 혼신으로 구출하려는 구도자의 몸짓이다. 생명의 피고 지는 순리에 대한 천착과 애잔한 존재에 기울이는 시선이 뜨겁다.                     

 

 

어린잎이나 떡잎이 되어도 사랑스럽다
필 때 파안대소하고, 질 때 눈물 뚝 흘린다

왜 사람이 꽃을 좋아할까?

꽃의 생명은 한 숨, 사람도 한 숨
만물 원리가 조그만 씨앗으로 잉태되어 영혼이 깃든다

온 세상을 날아가는 꽃 
바람이 실어주고 태양이 길러주어

태엽을 감고 맷돌처럼 세상을 돌리는 이여
한 방울 ‘뚝’으로 꽃을 지우는구려

그래
- 시 「꽃」 전문

 

땅을 박차고 힘껏 뛰면 여러 번 오를 수 있어
하지만, 양쪽에 줄 잡은 사람 마음이래

뛰어오르고 내리고
시간 가는 줄 몰랐네

툭~투욱

고무줄 끊기는 소리에 공중을 휘돌던 다리
푹석 내리꽂고 몸은 좌향좌 우향우

튀고 달아나는 철이 머리를 달음질하여
붙잡으니 휘둥그레 놀란 눈

아무리 뛰어올라도 그 자리
줄 잡은 이 없으면 재미없는 놀이
세상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장단 맞추네
- 시 「고무줄놀이」 전문

 

 


시 「꽃」의 내력을 탐색하면서 생명의 생성과 생명의 소멸에 대한 시인의 그윽한 시선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숨에 피어나고 한 숨에 떨어지고 마는 덧없는 꽃의 역사를 짚어내는 몸짓이 처연했다. 또한 사람도 꽃과 다르지 않다는 생명의 순연한 순환 고리를 지긋한 시선으로 조망해내고 있는 것이다. ‘조그만 씨앗으로 잉태되어 영혼이 깃드는’ 신비로운 생명 존재의 규율을 가늠한다. ‘태엽처럼 감고 맷돌처럼 세상을 돌리는’ 절대자의 설계도면 속에서 어느 날 ‘뚝’ 떨어져 사라지는 꽃이며 사람 하나의 길이 쓸쓸해서이다. 시인은 무엇 때문에 ‘왜 사람이 꽃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던져 놓은 것일까 궁금했다. 굳이 예감하건데 꽃과 사람의 성품이 피고 지는 순리하나로 동일시되고 있는 탓이다. 어느 날 눈부시게 피었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한 방울 ‘뚝’이 되어 흔적마저 버리고 지워지는” 까닭이다. 그래, 그렇지 긍정의 아이콘으로 손을 잡는 화합이다. 시 「고무줄놀이」를 들여다본다. 김근숙의 화법은 단순한 의미전달만의 수행은 아니다. 고무줄놀이 하나만으로도 심오한 삶의 철학을 대입시켜 ‘질문하고 답하는’ 해독(解讀)의 경지를 확장시킨다. ‘땅을 박차고 힘껏 뛰면 여러 번 오를 수 있어/ 하지만, 양쪽에 줄 잡은 사람 마음이래’ 뛰어오르고 내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무아의 경지 속에서 한 시절의 추억을 이 시는 소환시키고 있다.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까닭은 고무줄 양쪽 끝에서 줄을 잡아주던 친구들의 배려 때문이었다는 삶의 질서를 깨우치게 한다. 슬픔이 기쁨이 되고 기쁨이 슬픔에 이를 수 있다는 순환작용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의 고무줄놀이 속에서는 양념처럼 등장하게 되는 철이가 뚝-뚜욱 끊어버린 고무줄로 공중에 휘돌던 몸이 푹석 내려 꽂이고 좌양좌 우향우 달아나던 철이의 개구쟁이 몸짓도 아름다운 시절의 장단이었다.

 

 

작은 어깨 동그랗게 말아 시린 손, 새파래진 몸
들여다보며 바닥을 응시한다

초점 잃은 시선이 머무는 곳에 갈고리 같은 나의 삶
얽히고설키어 헤어나지 못하네

굽은 등 위로 비추어진 햇살에 붓고 부풀어 오른 멍울 자국

내 안의 불성(佛性) 찾아 먼 길 돌아 
심연(深淵)에 닿으니

군중 앞에 죽음도 불사할 용기 있다 하던 나
홀로 두려워 주섬주섬 두리번거리는 모습 비굴하여라 

저 너머 존재하는 건 공포인가, 환희일까? 
선일까, 악인가

아니
궁극의 완벽함은 시공도, 경계도 없는
무(無)
- 시 「저 밖에는」 전문

 

가벼운 바람이래도
실눈 같은 간교가 있으면
살짝 스쳐도 베인다

졸졸 흐르는 물도 상처를 느끼고
낙엽 한 잎에도 짓물린 눈물 흘린다

우연히 생각 없이 흘렸던 말들이
싹이 트고 꽃망울 맺어
여기저기서 붉은 생채기를 토한다

시간도 스치고 공간도 텅 빈다
지나가는 것은 밟으며 가고
쉬는 숨 헛기침 한다

언젠가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느닷없이 와
임박한 무렵에서야 진아(眞我)와 마주할진데

스쳐가는 것은 
그리 가볍지 않다
- 시 「스쳐가는 것」 전문

 

 


삶의 바다에 닿으면 밀려드는 파도의 야멸찬 손끝은 경직된 긴장에 몰입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어깨 동그랗게 말아 시린 손, 새파래진 몸/ 들여다보며 바닥을 응시한다’는 극도로 초췌해진 ‘갈고리 같은 나의 삶’의 피폐를 시 「저 밖에는」은 조망하고 있다. 얽히고설키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참담한 모습이다. ‘굽은 등 위로 비추어진 햇살에 붓고 부풀어 오른 멍울 자국’은 결국 내 안의 불성(佛性)을 찾아 빠져나오기 힘든 마음 깊은 멍울을 참회하게 한다. ‘군중 앞에 죽음도 불사할 용기 있다 하던 나’에게서 내가 저 홀로 두려워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비굴하기 짝이 없다는 화자의 고뇌는 저 너머 밖이라는 미혹의 세상을 견주기에 이른다. ‘공포와 환희, 선과 악’의 존재가 가능한 것일까 질문한다. 따라서 ‘궁극의 완벽함은 시공도, 경계도 없는/ 무(無)’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번뇌의 얽매임에서 해탈의 자유를 꿈꾸게 된다. 극한의 고통 속에 몰입하여 파고의 늪에서 자아를 실천하는 수행이 아닐 수 없다. 시인 김근숙의 시문학의 바탕은 불심의 근원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세상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 부처에 닿기 위한 정신이다. 시 「스쳐가는 것」의 의도에서도 가벼운 메시지는 아니다. 모순된 삶의 궤적이 칼이 되어 살을 베는 아픔을 담고 있다. ‘가벼운 바람이래도/ 실눈 같은 간교가 있으면/ 살짝 스쳐도 베인다// 졸졸 흐르는 물도 상처를 느끼고/ 낙엽 한 잎에도 짓물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무심히 스치는 바람 한 결에도 ‘간교’가 있다면 칼이 되어 베이고, 졸졸 흐르는 물도 물밑의 자갈에 상처를 입고 흐느끼며 흐르는 것이다. 낙엽 한 잎에도 짓물린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생각 없이 흘린 말들이 여기저기 붉은 생채기가 되어 상처를 만든다. 하지만 ‘언젠가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느닷없이 와/ 임박한 무렵에서야 진아(眞我)와 마주할진데// 스쳐가는 것은/ 그리 가볍지 않다’고 한다. 무심히 스치는 바람 한 줄기의 ‘간교’한 술책이 뿌리 깊은 상처를 키우지만 종내에는 진정한 나[我]를 찾는 근원에 이는 과정을 설파하고 있다.

 

 

손을 내밀어, 잡아주게
가까이 다가와 안게
 
혼자라 외롭고 힘들다고
지쳐서 훌쩍이는 너

울지 마라 아가야

세상은 늘 열려 있고
하늘은 널 품어 안아

(중략)

손을 내밀어 가까이, 더 가까이 오렴
꽈-악 안아주게

자라목 등 뒤로 쏟아지는 햇살
눈부시다
- 시 「마중」 중에서

 

전두엽의 회전이 느려지면
편도체는 성가시게 빨라지고
대, 소뇌의 활동은 갈팡질팡

뇌 안에 영혼 숨을 죽이고
혈관 속을 흐르던 피
방울, 방울 느림보 걸음

어쩜 좋아

쉬어가는 목소리
쥐가 내리는 손, 발 
푸르락 붉으락하는 얼굴

심장의 피 끓는 소리
낮은음자리표
눈이 저절로 감기네

맥박은 차츰 하나, 둘, 셋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그대
타나토스
- 시 「이를테면」 전문

 

 


시 「마중」의 메시지는 ‘혼자라 외롭고 힘들다고/ 지쳐서 훌쩍이는 너’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다. 마치 화자의 외로움과 힘겨움을 치유하듯이 지쳐 훌쩍이는 너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거나 가까이 다가와 앉히며 권하는 무궁한 배려이다. “울지 마라 아가야” 세상 삶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에 보내는, 허술한 생명들에게 건네지 않을 수 없는 도닥임이다. 세상은 늘 열려 있고 하늘은 널 품어 안아 서러움의 한때는 지나가는 폭풍이어서 억척과 핍박의 흰 이를 드러내던 계절은 지나가는 일임으로 위무하게 된다. ‘손을 내밀어 가까이, 더 가까이 오렴/ 꽈-악 안아주게// 자라목 등 뒤로 쏟아지는 햇살/ 눈부시다’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은혜로 펴는 마중물로 고난을 극복하고 있다. 자라목 같은 결핍의 덩이로 움츠리던 등 뒤로 쏟아지는 햇살이 비로소 눈부신 손잡음을 만들어 낸다. 시 「마중」의 접속은 절대자의 손에 얹힌 무수한 사랑 같아서 찬연히 빛나고 있다. 시 「이를테면」은 의학적으로 인간의 대뇌 반구의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의 기능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중심으로 운동 중추와 운동언어 중추의 사고 판단과 같은 고도의 정신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의 현상에 대한 조명이다. 까닭에 전두엽의 회전이 마비되면 대뇌와 소뇌의 활동은 갈팡질팡하여 혈관 속에 흐르던 피가 느림보 걸음으로 활동이 마비되는 상황을 이 시는 그려내고 있다. ‘심장의 피 끓는 소리/ 낮은음자리표/ 눈이 저절로 감기네’ 마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하듯 하는 시 「이를테면」의 근저에는 전두엽의 활동이 하나 둘 마비되어 피할 수 없는 코마(coma) 상태에 몰입되고 있다. ‘맥박은 차츰 하나, 둘, 셋/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그대/ 타나토스’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을 의인화한 신으로 타나토시는 자기를 파괴하고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환원시키려는 욕구로 죽음의 본능을 구현시키려는 존재이다. 시인의 지난한 삶의 애환이 뿌리깊이 감지되는 시편이다.  

 

 

등골 시려 가슴조차 저렸던 날 밤의 장막 위로 휘장을 거두며
초록의 눈 아장거리는 조그만 흰 발이 걸어 나온다

벗은 등 사이로 햇살 가득 접힌 채 움츠려 있던 날개
힘차게 요동치며 양날의 검처럼 펼쳐진다

무대 위에서 옹알거리던 소리 웅성대더니
생령(生靈)의 기운, 객석을 일으킨다

허~

검은 눈빛 생경한 소년을 보며
박장대소(拍掌大笑)하는 나
- 시 「초록의 눈」 전문

 

마음에 씌어진 가시면류관
하루가 온종일인지, 반낮이 하룬지
스스로의 옹기에 가둬져
생각을 말고 풀기를 여러 날 곰삭도록 하면서
변명을 끌어다 손사래 치며 웃는다

시간이 더하기를 하고
공간이 뺄셈을 한다

메스를 든 그가
부풀려져 있는 심장에 바늘귀를 툭 치니
쏴아~ 쏴 검붉은 피가 흐른다

마음이 회전하고 날갯짓한다
감았던 두 눈 뜨고 가두었던 생각 내려놓는다
일도 아닌 것을
- 시 「생각의 전환」 전문  

 


시 「초록의 눈」은 이 시집의 표제 시이기도 하지만 싱그러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생성의 기운이 맴도는 신비로움이 있다. 이번 시집 여러 편의 좋은 시 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시라고 생각한다. ‘등골 시려 가슴조차 저렸던 날 밤의 장막 위로 휘장을 거두며/ 초록의 눈 아장거리는 조그만 흰 발이 걸어 나온다’는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이 초록의 눈을 뜨고 아장거리는 조그마한 흰 발로 대지의 기운을 다독이고 있다. 선명한 이미지들의 결합이 이처럼 아름다운 숨결로 호흡을 시작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벗은 등 사이로 햇살 가득 접힌 채 움츠려 있던 날개/ 힘차게 요동치며 양날의 검처럼 펼쳐진다’ 우렁찬 숨의 표호가 삶이라는 무대를 딛고 일어서 비상하려는 자세다. 어느새 ‘무대 위에서 옹알거리던 소리 웅성대더니/ 생령(生靈)의 기운, 객석을 일으킨다// 허~/ 검은 눈빛 생경한 소년을 보며/ 박장대소(拍掌大笑)하는 나’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 수 있을까. 한 그루의 초록이 한 사람의 청년이 세상을 지고 누군가 비워놓은 자리를 채우고 있다. ‘마음에 씌어진 가시면류관/ 하루가 온종일인지, 반낮이 하룬지/ 스스로의 옹기에 가둬져/ 생각을 말고 풀기를 여러 날 곰삭도록 하면서/ 변명을 끌어다 손사래 치며 웃는다’는 시 「생각의 전환」은 마음에 씌어진 가시면류관으로부터 파생된 밤낮을 잃고 스스로를 유배시키는 생각에서 해방되기를 노력한다. ‘시간이 더하기를 하고/ 공간이 뺄셈을 한다’는 이 기막힌 공법에는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공간을 비우고 싶은 의지가 투철하다. 문제는 ‘메스를 든 그가/ 부풀려져 있는 심장에 바늘귀를 툭 치니/ 쏴아~ 쏴 검붉은 피가 흐른’다고 해도 놀랄 것 없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시련이 다가선다 해도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의 전환’이다. ‘마음이 회전하고 날갯짓한다/ 감았던 두 눈 뜨고 가두었던 생각 내려놓는다/ 일도 아닌 것’으로 호탕하게 내려놓는 이 초탈의 비움이 검붉은 피의 흐름까지 일도 아님으로 무색하게 한다. 거듭 거듭 김근숙 시의 면모를 감상하며 느끼는 일은 놀라운 인내와 관성(慣性)으로 견디어 일어서는 성자의 모습을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거짓의 옷
가시가 돋친 입의 속박으로
피 한 방울씩 흘릴 때마다
한 사람씩 사라져 간다

위선은 속살 숨긴 그림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나온다

흥건히 젖은 얼굴에 배어드는 고뇌
포효하는 사람들

짓밟혀진 포도 위로 사라져 가는 정의
선혈 낭자한 바닥엔 사슴 눈망울의 그대가
떨고
- 시 「숨은 그림자」 전문

 

 


‘거짓의 옷/ 가시가 돋친 입의 속박으로/ 피 한 방울씩 흘릴 때마다/ 한 사람씩 사라져 간’다로 유리된 시 「숨은 그림자」는 위선으로 본질을 숨긴 어둠의 그림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나오는 세상이다. 믿음이 사라진 괴리가 만든 흥건히 젖은 얼굴에 배어드는 고뇌로 인하여 사람들은 짚단 쓰러지듯 피 한 방울로 한 사람씩 사라지게 된다. 혼란의 도시는 힘 있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정의는 먹구름에 숨어 말을 잃어가는 거짓의 옷이다. 김근숙의 시는 바로 짓밟혀진 포도 위로 사라져 가는 정의와 선혈 낭자한 바닥에 사슴 눈망울의 ‘그대’가 떨고 있음을 고발하려 한다. 어디서 무엇을 동경(憧憬)하여 포도에 낭자한 선혈과 사슴 눈망울로 떨고 있는 그대(정의)를 공포로부터 구출할 수 있을지 대책이 없다. 숨은 그림자는 정의를 숨긴 미얀마의 민중궐기인지 모른다. 아니 믿음이 사라진 너와 나의 흥건히 젖은 얼굴에 배인 고뇌인지 모른다. 
김근숙의 시집 읽기를 이쯤에서 줄인다. 김근숙 시인은 언어 사용의 틀이나 범위가 큰 편이다. 대개의 시들에서 표출되는 암울한 주제가 내포하고 있듯이 생과 사의 문제들과 대립하고 타협하는 시편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이 모두는 진지하고 경계를 초월하여 가슴이 메어 오는 안타까움으로 주저하기도 했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얇은 유리판 위의 뜀뛰기와 같다는 경계를 주문하지만 남다른 관계의 혹독한 고뇌로 지탱하기 힘겨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일어서 명예로운 시인의 반열에 들게 되어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시집의 출간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들이 눈에 띄어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더 빛나는 시인의 자리에 들어 부단히 노력해 주기 기원하며 거듭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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